팬심 빼고 보는 유희열사태
긴 글이고 개인적인 생각 써놓는 것이지만 관심있는 사람이 보기에 따라서 흥미로울 수도 있음
먼저 아주 당연한 전제를 하나 하자면,
우리나라 특유의 국수주의, 국뽕은 진짜 어딜가나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인데 특히 문화에서 이게 아주 심하다.
스포츠에서 국뽕은 관전 자체에 몰입시켜서 재미를 더 주기라도 하지,
문화에서 국뽕 부르짖는 건 가끔 진짜 내가 교과서에 나오는 오공세대를 사는 건지 엠지세대에 사는 건지 모르게 만든다.
비티에스니 블랙핑크니 빌보드에서 난리치는 걸로 우리나라 음악 좃된다, 최고다 빨아제끼는 것도 웃긴 일인데,
(군면제 이슈가 한창 나올 때 외국인들의 '빌보드 1등한 게 왜 그들 나라에서 혜택을 줘야하는 거지?'에 대한 의문점이 그 좋은 예시가 된다)
보통은 저스틴뜨또가 캐나다인이라고 캐나다인이 자부심 안가지고,
그린데이가 세계적인 밴드가 되었지만 캐나다인은 그들을 미국밴드라고 생각한다. (실제 겪은일)
뭐 이해해본다 쳐도
그럼 우리나라 음악이 엄청나게 창의적냐는 거냐, 라고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거다.
빌보드를 정복했다=훌륭한 음악이다, 독창성이 있다, 가 절대 아니라는 거다.
우린 결국 서구권, 영미권의 음악을 따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막말로 우리가 민요로 빌보드 차트 점령했나? 유희열이 국악뮤지션인가? 아니잖아
우린 서구권에서 발전되어온,
블루스와 재즈와 락을 바탕으로 삼은
기타 베이스 드럼 피아노 스트링 브라스를 쓰는
서구권의 음악을 우리식대로 한다는 것이다.
고로, 우리나라 음악은 원래부터 출발자체가 독창적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바로 사대주의를 거론하며 우리나라 뮤지션들을 비하하는 게 되겠지만, 또 이게 그렇지 않다.
음악을 듣지 않는 창작은 있을 수가 없다.
즉, 뮤지션들은 애초에 음악이 좋아서, 저 뮤지션의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시작한다는 것이지 음악에 아무 감흥 잆는 상태에서 음악을 시작한다는 전제가 성립될 수 없다는 거다.
뭐 가업 물려받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무슨말이냐면 뮤지션의 대부분은 음악이 좋아서 부르고 연주해보고 따라하면서 음악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우리 노래방 가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한 얘길 왜하냐면 여기서 '따라하는' 영역에 대한 얘기를 해야하기 때문인건데
따라하는 것에도 재능이 몹시 필요하다. 이것도 아주 당연한 얘기다.
나얼이나 박효신 좋아한다고 누구나 나얼처럼, 박효신처럼 부를 수가 없듯이 작곡/편곡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백날 천날 음악을 듣는다고 토미타랩을 그대로 우라까이 할 수 없다는 거다.
더 나아가 오년 십년 미디만 붙잡고 있는다고 야마시따 따쯔로 분위기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누군가를 레퍼런스 삼아서 이를 내 식대로 표현해내는 것, 또한 굉장히 어려운 창의적인 영역이라는 것이다.
쉬운거면 돈 본위의 삶을 사는 사람들 모두가 외국 레퍼런스 삼아서 음악한답시고 달려들었겠지. 돈만보고.
이거 아무나 못한다.
이거 대충한 사람들 진작에 다 떠내려갔다. 룰라 이상민이라든가.
레퍼런스 삼아 독창적인 것을 쌓아나간 뮤지션들이 아직까지 음악하고 있는 것이다.
보코더를 쓰면 일렉트릭라이트오케스트라의 표절이냐
극적인 전조를 하면 데이빗포스터를 따라한 거냐
가 아니라 보통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는 것이다.
한창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던 시티팝(AOR)의 장르 또한 일본 고유의 것이 아닌,
비치보이스와 모타운, 소울, 디스코 장르가 일본으로 오면서 퓨전재즈-시티팝으로 탄생한 것인데,
이 장르는 80-90년대 우리나라 가요에도 영항을 많이 줬다.
일본 버블경제 이전의 풍요로움과 우리나라 IMF이전의 풍요로움,
이런 시대상을 담은 장르인데 아 그럼 우리나라 IMF도 일본 버블경제 표절한거냐
서태지가 이분야에선 유희열보다 몇 수 위인데,
서태지는 해외의 좋은 음악(일부 사람들이 말하기로는 '돈 될 것 같은 음악')을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영역 안에서 기가 막히게 재해석해서 창작하는 뮤지션인데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랩뮤직, 뉴잭스윙, 솔로시절의 랩메탈, 이모코어, 신스락 까지 기가 막히게 파악해서 발표한다.
서태지의 다음 앨범은 아마 서태지가 레퍼런스 삼을 만한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할 때 일지도 모른다.
마치 70-80년대의 AFKN이 나오는 트랜지스터 라디오 같음.
안테나로 해외의 음악이 나오는 컨텐츠를 수신해서 소리로 내보내주는.
그런 의미에서 유희열의 소속사 이름이 안테나인 것이 참 재밌다.
여기서 '레퍼런스'의 대부분은 '표절'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멜로디 몇마디 같고 지랄이고의 영역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 편곡의 영역에 해당되는데,
유혈사태의 대부분의 표절시비랍시고 거론된 곡들 대부분이 이 '편곡'에 관한 것들이기 때문에 애초에 표절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최초의 보사노바를 선보인 뮤지션(내가 알기론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이 이런 풍이 너무 독창적이어서 장르화가 되었고,
이정도의 독창성을 만드는 것이 아주아주 드문 사례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참신한 편곡들은 장르화되지 않은 채 수많은 다른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이 독창성 또한 다른 음악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그 다른 음악은 또 다른 음악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 그렇게 부기온앤온.
즉 아주 독창성이 있는 뮤지션을 우리가 기리고 찬사해야하지, 그정도 독창성이 없다고 쟤는 따라쟁이야 라고 비난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대부분의 표절의혹, 레퍼런스 의혹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위에서 쓴 국뽕얘기를 다시 꺼내자면,
지금도 우리나라 대중음악에서 '새로운 시도'란 '외국 뮤지션 누군가가 해낸 것'을 재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뮤지션 비하가 아니라, 차원이 아예 다르다.
내가 아는 한 드러머는 누굴 좋아했더라 .. 기억은 안나지만 쨌든 개 잘하는 드러머 한분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 사람은 그냥 앉아서 탐 하나만 퉁- 하고 쳐도 다르다고 하더이다.
도대체 뭐가 다르지?? 싶으면서도 그게 프로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만이 듣고, 알아차릴 수 있는 영역이 있는 것이지
우리나라 음악도 너무 좋아하고 연주자들 너무 존경스럽지만 솔직히 토토를 들으면 진짜 애초에 연주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 스스로가 외국 따라하지 않고 독창적인 사례는 없냐, 하면 없진 않다.
이날치 같은 밴드가 예를 들기 쉬울 것이고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의 결합)
윤상이 소리의 '역위상'을 이용해 만든 곡이라든지(사운드 메커티즘을 이용한 작업), 둘째아들의 옹아리소리를 기반으로 만든 곡이라든지(일상의 소리들을 가공한 작업),
롤러코스터의 작업방식이라든지 (악기 각자 홈레코딩-소스 모아서 편집-이를 미디로 재배치, 밴드작업+일렉트로닉 작업)
하지만 아주 당연하게도 외국이 훨씬 참신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않겠나.
위의 모든 예시 또한 어쩌면 외국에서 먼저 했을 수도 있는 사례들이다.
새로운 시도를 위해 새로운 음악을 디깅하고, 찾아다니고, 고민해보고 따라해보고 만들어보고, 하며 뮤지션은 더디게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이걸 표절이라고 해버리면, 창작의 족쇄를 채우는 일이 되어버린다.
아울러서 이제 형 급 뮤지션들의 새로운 음악은 더 듣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공든탑이 무너질 수도 있는데 미쳤다고 새로운 음악 냄?
그리고 새로운 시도 없는 아래와 같은 음악만 듣게 된다.
1) 허구헌날 술 퍼마시고 질질 짜는 싸구려 감성 발라드 : 한번 들어도 다음에 무슨 코드 어떤 편곡 나올지 다 맞출 수 있음
2) 아이돌 : 아주 독창적인 요소들이 많은 장르인데 작곡가 수십명이 달려들어서 자동차 조립하듯이 만들어내는지라 어떤 음악적인 성취를 발견하기가 어려움. 그리고 너무 퍼포먼스에 집중되는 경향
3) 리메이크 : 새로운 시도가 없으니 리메이크만 해대는 거지
4) 음악프로그램 : 1번과 3번을 2번이 부르는 끔찍한 혼종
5) 힙합 : 음악적인 요소 중에 메시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독창적일 수 있고 무엇보다도 샘플링 사태를 극복해낸 전력
6) 힙스터음악 : 느린 템포 흐느적대는 신스 사운드에 졸린 목소리의 음색 깡패들이 온갖 힙한척 다하면서 하는 장르의 음악. 사운드 기술에 따라 발전하는 장르이기에 힙합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표절과 레퍼런스를 피해가기 쉬움.
대충 요정도? 아 하나 빼먹었다 뜨로뜨. 하지만 뜨로뜨도 일본 엔까 레퍼런스인걸.
그니까 제발 국뽕좀 빼고, 해외 따라하는 것에 자격지심 좀 갖지 말고, 우리는 우리나라 안에서 우리나라만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즐거이 즐기자는 것이다.
지금 사태는
햄버거를 좋아하는 내가
롯데리아를 즐겨 먹다가,
쉑쉑버거를 알게된 뒤에
'좃데리아 ㅅㅂ!! 쉑쉑이 제대로네' 하는 거랑 똑같다는 것이다.
쉑쉑을 먹고 싶지만 가격, 접근성, 양 등 허들이 높기에,
또 롯데리아는 롯데리아만의 감튀, 사이드메뉴 등의 장점이 있기에,
각자 따로 즐거이 즐길 수 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즐겨 듣던 유희열의 곡이 류이치사카모토 따라한 거라고 유희열 안듣고 류이치사카모토 들을 사람 있나?
그냥 실망만 하고 '이제 안들엇!' 하고 다른 거 듣겠지. 니가 듣는 다른 것들도 유희열과 똑같은 레퍼런스 작업방식의 곡인데도. 솔직히 유희열보다 훨씬 더 낮은 퀄리티의 하수의 음악일 가능성이 높은)
그리고 표절시비에 거론된 토이의 곡 말고도, 유희열만의 독창성을 가진 훌륭한 곡들도 참 많다.
1) 4집의 거짓말 같은 시간이라든지.
레퍼런스 없이 유희열이 자주 해오던 발라드 스타일을 극도로 밀어부치며 독창성을 발휘한 곡의 예
2) 6집의 헤피엔드
토미타랩을 레퍼런스로 한 유희열 특유의 세심한 남자 주인공 시점의 러브송
토이의 음악이 토미타랩을 따라한 거라고 해서 그 가치가 격하되는 게 아니라
토이의 찌질하고 세심한 주인공의 심리가 입혀진 토미타랩의 사운드, 도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즉 1번도, 2번도 독창적인 창작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는,
솔직히 음악을 그렇게 애정있게 듣지 않는 대다수의 대중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뮤지션 하나 담궈버리는 게 너무 열받는다.
그렇게 내가 들을 즐거움이 줄어드는 건 열받다 못해 너무 슬프다.
난 음악을 듣는 게 너무너무 좋은데 말이다.
세줄요약
1. 제발 문화에선 국뽕 좀 싹 빼고,
2. 한국 대중음악은 레퍼런스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 또한 창작의 영역이라고 봐야하며,
3. 혹여 깔거면 표절이라고 까지 말고 레퍼런스라고 까면서 대신 외국 음악을 즐거이 들어주세요.
반박시
조용필=필콜린스
남진=엘비스프레슬리
조영남=그린데이
임재범=마이클볼튼
김동률=루이스미구엘
박진영=모타운
유희열=일본음악그자체
비티에스=빌보드를 점령한 리빙레전드. 베토벤과 함께 역사에 길이남을 위인
Best Comment
한두곡 레퍼런스 수준이였으면 지금 논란이 이정도도 아니였지
마키하라, 토미타,사마모토등등 일본 유명작곡가 표절의혹만 30곡이 넘는데
한국 음악은 레퍼런스 사회니까 넘어가자는게 먼 개소리인지 모르겠네
넌 중국 욕하지마라 레퍼런스 천국이니까
아무튼 결국 레퍼런스든 리메이크든 오마주든 샘플링이든 기타 유사한 표현이 많이 있는데
어디서 따온 2차 창작물이라면 처음부터 알리고 세상에 내놓아야지. 끼리끼리 모여서
자기들끼리 노는 것도 아니고 엄연히 영리 활동을 하는 건데. 그걸 그냥 가져다 쓰면 문제가 있지.
예술가 창작자가 저작권 개념이 없으면 어떻게 하겠단 건지. 그리고 이런 레퍼런스 같이
재생산되는 창작물은 앞으로 더 나올 수 밖에 없고 그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숨기지 않아야 맞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