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졌다.
만난 지 3년 정도 된 여자친구가 있었다.
내가 의경이었을 때, 바닥이 이글거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더운 날이었다.
신호등 앞에서 근무하고 있던 나한테 와서는 길을 물었었다.
예쁜 건 둘째치고 목소리와 말투 분위기가 신비했다.
벙쪄있던 나는 되든 안 되든, 지금 아니면 다신 못 보겠다는 생각에 번호를 물어봤고
그렇게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다.
제대 후, 너와 나는 잘 맞았고 잘 통했다.
싸움 한번 없이 잘 지내고 있는 우리의 관계가 나는 몹시나 흡족하였다.
이상적인 관계였고 깨고 싶지 않았다.
걱정했었다, 난 가진 게 없었고 너는 가진 게 많았으니까.
열등감이 들었었다, 해주고 싶은 건 많은데 받기만 했었으니까.
평소 아이유를 좋아하던 너는 매년 콘서트에 갔고, 같이 가자는 너의 말을 단 한 번도 나는 들어준 적이 없었다.
나는 아이유가 싫다고 그랬다, 네가 좋아하는 것까지는 말릴 생각 당연히 없다고 그러니 너도 나를 존중해 달라고 그랬다.
왜 싫냐고 묻던 너한테 나는 처음으로 거무스름한 내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나와 같은 나이에 그렇게 잘 된 사람을, 없는 돈 만들어내 가서 보는 게 싫어서 싫다고 그랬다.
나는 삐뚤어졌다.
열등감이 가득했고 자존감이 낮았다.
너를 만나기 전 내 인생은 내리막이었다, 재능이 반을 먹고 들어가는 내 전공에서 나는 노력의 재능이 있었다.
부족함을 노력으로 채웠고, 그 결과는 무리였다.
수차례의 수술에 결과는 실패였고, 그렇게 내 인생은 실패했다.
그러다 널 봤고 너의 존재는 내게 성공 그 자체였다.
널 웃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게 내겐 성공이었고 내 전공은 그렇게 변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또다시 노력으로도 결과를 좋게 내지 못했다.
네가 떠났다.
긴 머리에 흰 피부, 새벽 라디오 디제이의 음성처럼 차분하던 너는
본 적 없는 눈빛과 어투로 나를 밀었고, 그렇게 나는 밀렸다.
이해한다.
내가 못나서 떠난 게 아니라 자존감이 낮은 나를 보기 힘들어서 갔다는 것을.
미안하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 너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건
네 앞에서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잘 지내고 있는 거냐" 라는 너의 카톡은 읽지 않을 거다.
나는 이제 헤어졌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
내가 온전한 사람이 되어 따듯하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