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계와 그녀의 세계가 같은 사이즈일 거란 보장은 없다.
내 절반과 새로운 그녀의 절반이 만났을때,
온전한 오른손 하나에 새끼손가락 하나 더해지는 정도의 사이즈 차이가 있을수도 있다.
심지어 새로 붙은 새끼 손가락이 벌레 먹어서 다 썩어가고 있을수도 있다.
그 벌레 먹은 손가락이 반드시 그녀의 것이란 보장도 없다.
중요한 것은 "변수로 살아가는 삶"이란 것이다. 그것이 삶의 재미라고 느껴진다.
내 세상이 너무 중요해서, 침식당하거나 그녀의 세상을 침식하는 것이 싫다면 혼자 살아야 마땅하겠지만,
기나긴 인생에서 그것은 결국 지루해질 것임이 틀림없다. 혼자로서의 변수는 용광로에 담금질하는 칼처럼 젊은 시절의 찰나에만 반짝일뿐, 이미 굳어진 후에는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 말라면 하지마 ㅆㅂㅅㄲ야"도 변수를 누려본 사람의 심술의 말일뿐,
비록 그 결합이 땅속의 매미유충과 하늘의 빗방울일지라도, 만남은 새로운 변수 그 자체만으로 삶을 다채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