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전쟁 영웅 애꾸눈 얀 지슈카
주성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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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5 15:45
1360년 ~ 1424년
15세기 체코(당시엔 보헤미아)의 장군이자
불패의 명장, 또는 전쟁 영웅으로 불리며
근대적인 전투의 개념을 만들어낸 인물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얀 지슈카는 몰락한 귀족이었지만 본래 부유한 가문의 출신이며
용병 신분으로 여러 내전과 전투 등에 참가하면서
지용을 겸비한 명장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얀 지슈카가 이름을 날리게 된 계기는
당시 교회의 사유재산 소유를 반대하던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사상에 심취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얀 후스는 체코의 종교 개혁자로서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의 부패를 비판하였고
교회의 재산권 박탈을 주장했다.
또한 교황의 권위와 교회의 계급 제도를 부정하며
많은 농민들에게 신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고 말하며
평등사회를 주장했던 인물이었지만
결국 교황의 반감을 사 화형을 당하고 만다.
얀 후스의 죽음에 얀 지슈카와 농민들은 더 이상 이런 나라에 살 수 없다며
전쟁을 선포하게 되는데,
이 전쟁이 바로 "후스 전쟁" 이다.
후스 전쟁은 1415~1434년,
총 19년 간의 전쟁을 치루게 되는데
이 후스 전쟁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농민군인 후스파와
국가의 귀족,상류층 시민들이 주를 이룬 프라하 교회가 전쟁을 했다는 것.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일반 농민군인 후스파는
단 한번도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59세에 달하는 노장 얀 지슈카는
무패의 명장으로 역사상 몇 안되는 무패의 신화를 이룬 인물이며
안 지슈카의 지슈카는 애꾸눈 이라는 뜻으로
어린 시절 한 쪽 눈을 잃었다고 한다.
얀 지슈카가 더 대단한 이유는 전쟁 당시,
귀족들과 상류층의 상대로 전투를 치르면서
농민군들이 피해를 거의 입지 않고 승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수레진" 이었다.
농민들의 운송용 마차와 말들을 이용해
마차에 철판을 대고 원형태로 마차를 이어 기사들의 돌격을 저지한 후
마차 안에서 총과 포를 쏘며 적을 죽이거나
마차를 무분별하게 퍼트린 후
총,낫,곡괭이 등으로 무장된 농민 보병들을 앞세워 적들을 이겨냈다.
하지만 전투 도중 남은 눈 마저 멀게 되어 장님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천재적인 군사 재능으로 연전연승을 했지만
1424년, 얀 지슈카는 전염병으로 돌연 사망한다.
얀 지슈카의 죽음에 군사들은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크게 통곡했다고 하며
1436년, 이그라우 협정으로 전쟁을 승리로 종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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