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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주성치 0 326 6 0
조선이 건국되고, 200년 가까이 해전이 없었던 상황


수군을 유지하는 것 자체도 원래는 논쟁이 많았다.




임진왜란이 임박했을때, 병력이 없으니 수군병력도 모두 육군으로 편성하라는 조정의 명령에

이순신은 반대상소를 올렸다.



" 수육 둘중 어느 방어도 소홀히 하여서는 아니되옵니다 " 






 거기다, 병사들은 웬만하면 수군을 안하려고 했다.


실로암.JPG [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마치 육군훈련소에서 GOP를 피하고 싶은 훈련병들의 간절한 마음같은 것일까



수군병과가 워낙 힘든데다, 취급이 거의 노비수준이었다.

아무도 안하려고 하는 수군.




그래서 이 수군같은 경우에는 한번 수군이 되면,

자식세대로 강제 군역이 세습이 됬다.




이순신4.JPG [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임진왜란을 수군이 구했다고 할때,

이순신 장군님도 훌륭하지만,




사실, 이 수군 병사들이 천민대접을 받으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희생정신으로 나라를 지킨것이다.




1.JPG [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수군을 하지않으려는 이유 중 하나는,


배가 침몰하면, 바로 사망하기 때문이다.



2.JPG [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병사들이 수군을 회피하려는 문제


이 것을 어찌 해결할 것인가?

이 문제를 놓고 토의하면 탁상공론이 일어났다.





그 탁상공론이란,

"바닷가에 사는 주민들을 수군으로 편성하면 되지않느냐?"

와 같은 류의 논리였다.





하지만, 이것은 대표적인 탁상공론중에 하나였다.


바닷가에 살더라도 수영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임에도 불구,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을 해버리는 것이다.




사실 그것밖에 대책이 나오지 않았던 것





그래서 어쩔수없이 천역으로 박았는데,



수군.JPG [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이 분들이 나라를 배신하지 않고

거꾸로 나라를 지킨것이다.







23전.JPG [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23전 23승 
무패의 신화


이순신 장군의 첫 신화는 옥포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신중한 성격이었던 이순신 장군은 
처음엔 옥포 공격을 거절한다.



옥포는 원균이 담당하는 경상우수영의 구역,

거기에 관할문제 뿐 아니라,



물길,조류 등 자기 관내가 아니면,

그에 맞는 전술훈련이 익숙치 않은 상태인데


그런 불확실한 요소와 부족함이 있는 경남 해역보다는

자신들에게 익숙하고 확실히 준비했던 전라도에서 싸우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순신의 신중함이

후에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해임되고 하는데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경상도의 백성도 자신이 지켜야 할 백성들인데 어찌하리


애민정신이 강했던 이순신은


결국 옥포로 출정한다.



옥포해전.JPG [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현재 거제도에 있는 대우조선해양 조선소가 있는 자리




임진왜란의 이순신의 첫 전투였기 때문에

그가 이끄는 실전같은 훈련을 받은 수군들 조차

상기되어 있었고, 겁을 집어먹은 병사도 있었다.




바로 그때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이순신 장군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다.


갓순.JPG [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 勿令妄動 靜重如山 "
물령망동 정중여산

"망령되이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처럼 무겁게 행동하라"



 
이순신 장군의 말 덕에

마음을 가다듬을수 있었던 수군들



옥포.JPG [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조선수군은

음력 5월 7일 이순신의 호령에 따라

옥포 만에 정박해 있던 왜군에게 기습공격을 감행한다.



맹렬한 기습공격에 도도 다카도라의 수군은 혼비백산하여 육지로 달아났고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함대는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났다.



왜군의 함선 50척중

26척이 침몰했고,

4,000여명이 죽거나 다쳤으나.


이순신의 함대 피해는 전혀 없었고,

부상자만 한명있을뿐, 사망자는 한명도 없었다.




삽화.JPG [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이순신을 도깨비,악귀같은 모습으로 남겨놓은 일본인들

 

첫 전투부터 임팩트가 너무 컸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순신장군 귀신설

왜군에 퍼졌다.



ㅈㅈ.JPG [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공포의 차원을 넘어서 이순신은 

그들에게 사신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토요토미.JPG [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이 보고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올라가자,


"이럴리가 없다! 내 부하들이 이렇게 무능할리 없고,
조선에 그런 장수가 있을리가 없다. "


라며 보고를 믿지 않았다. 







쾅.JPG [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 누구도 그 장군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장군의 얼굴을 본 적은 모조리 수몰됬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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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명장들에게는 유사한 공통점이 한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완벽히 준비된 상태에서,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법으로 적을 격파한다."

라는 것이다.






관복.JPG [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 이기는 싸움만 한다. "

이것이 무패장군들의 특징 중 하나이다.





하지만, 언뜻 듣기에 

"못 이길것 같으면 싸우지 않는다?" 

라고 오해하실수가 있으나,


이순신 장군의 논리는 그것이 아니었다.





싸움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군은 보급로 때문에 무조건 전라도 해역으로 와야되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왜군은 무조건 와야되는데,

"유리한 곳에서 싸우지 뭐하러 나가서 싸우냐" 라는 것이 
이순신 장군의 논리였다.





이순신5.JPG [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게다가 최상급 전술가이기도 한 이순신 장군은

싸울때마다, 매번 패턴을 바꿔 변형된 전술, 응용전술 ,다른 전술을 구사하여

왜군이 대응하기 힘들도록 싸웠다.





전술안과 카리스마,

능력과 충심


그리고


전투에 임하는 각오까지





이순신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완성형 장수로 평가받고 있다.






산하.JPG [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 





석자 칼에 맹세하니, 산과 강이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옥포해전부터 시작하여 율포해전까지

7전 전승을 기록하고있는 이순신




전라 좌수사 이순신전라 우수사 이억기경상 우수사 원균과 합류.

다음 출정을 위한 훈련을 하며 

적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와키자카.JPG [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계속된 수군의 패배에 왜군또한 병력을 증강하여 

진격하는 일본 육군의 보조에 맞추기 위해 서진하고 있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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