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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주성치 0 419 5 1
조선이 한양을 재탈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그것을 저지하려 하는 일본군.


원래는 협공으로 일본군을 물리치고 한양을 점령하려 했으나,


이여송은 평양성 탈환의 성공으로 일본군을 얕봤다가 

벽제관 전투에서 패해 북진해버렸고

이 때문에

협공이 실패로 돌아가


조선군만 고립되었다.






버티려는 조선군 VS 없애려는 일본군

행주.JPG [6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그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큰 전투가

바로 행주대첩이다.


권율.JPG [6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권율 장군은 늦은 나이에 진사시험에 합격한 문신이다.

권율 장군(최종계급:팔도 도원수)

승병장 처영과 의병장 김천일

의병들 6천과
관군 3천

도합 9천의 병력이


음력 1593년 2월 

행주산성에 주둔한다.


행주산성은 말이 좋아 산성이지 낮은 언덕수준이어서, 험준한 지대가 아니었다.

또한 성벽도 낮은 토성이었기 때문에

토성 위를 목책으로 둘러싼채 수비하기 열악한 환경에서 싸울수밖에 없었다.


우키타.JPG [6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우키타 히데이에가 이끄는 3만의 일본군을 맞아
권율장군과 조선의병들은 격렬한 전투를 한다.

조선군은 일본군의 7차례나 되는 공격을




행주2.JPG [6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부 막아낸다.



이때 쓰인 무기는 
천자.JPG [6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화차, 신기전, 비격진천뢰, 천자총통을 포함한 각종 화포

바위,화살,불덩이,끓는 물 까지 총 동원되었다.



특히, 화차와 비격진천뢰의 활약은 대단했다.

비격진천뢰는 일종의 시한폭탄으로
오늘날로 따지면 큰 수류탄과 같은

작렬탄이었다.

이것은 날아오는 소리도 상당히 공포스러웠기 때문에
혼란을 주는 효과까지 있었다.



한가지 또 특이한 점은

조선군의 승병들이

석회의 발열반응을 이용한 석회주머니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화학전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행주3.JPG [6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최첨단 무기들을 활용한 권율장군과 의병들의 빛나는 방어전




하지만, 

훌륭히 잘싸운 조선군의 무기도 마침내 바닥이 나고,

함락직전의 절체절명의 위기의 상황이 다가왔다.


야사에 의하면, 
이때 부녀자들까지 돌을 날랐다고 한다.

돌을 투석하며 격렬히 뚫리지 않으려고 저항한 조선군.






그때,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진다.


경기 수군 절도사가 화살 수만발

배 두척에 싣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왔던 것.


칙쇼.JPG [6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실화?
 
그것을 본 일본군은 

그것이 조선수군의 후방지원임을 알아채고

화포와 무기들이 저기에 

또 실려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후퇴해 버린다.






9천조선군3만일본군이 맞붙은 이 전투는,

조선군의 대승으로 끝이 났다.



조선군의 사상자는 150명이 채 안되었고

일본군의 사상자는 최소 5천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키타.JPG [6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우키타 히데이에
이 전투에서 중상을 입어 겨우 목숨을 부지했고


일본군은 이때부터 조선군의 화포의 위력에 깜짝 놀라게 된다.



▼행주대첩 만화




행주대.JPG [6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한산도 대첩, 진주 대첩과 함께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기록된다.




한편 다시 임진왜란 발발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일본군의 동향을 파악해 수상한 움직임을 눈치챈 선조는
급하게 전쟁준비를 했다.


선조2.JPG [6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선조는 그 악명(?)과 다르게 의외로 합리적인 면모를 많이 보인 왕이었다)


능력있는 장수들을 특진시킨 선조.

도 그 중 하나였다.
(이름이 잘안보인다면,, 너무 눈부셔서 그런것입니다..)



이 전까지 종 8품이하 였던 이순신은

철저한 FM 군인스타일로

다른 군관들로 부터 
무수한 해코지와 시기,질투를 받았다.



선조는 그를 종 4품으로 특진시켜
최초로 수군 근무를 시켰다.


1589년 12월에는 백의종군을 한 이순신

류성룡이 천거하여 

전라도 정읍 현감이 되었고



전쟁이 임박한
1590~1591년에는 급격하게 이순신의 인사발령이 진행되었다.

이 혼란스러울 정도의 인사발령과 승진은
조선의 급박한 전쟁준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선조.JPG [6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한'다면 하는'남'자
 
이 때 간관들이 관례에 어긋날 정도로 승진이 너무 빠르다며 간하자 

선조는 다른 사람의 승진은 좀 늦출 수도 있다고 하면서도 
이순신의 전라 좌수사 발탁은 끝까지 고집했고 


신수.JPG [6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결과적으로 이것이 조선을 구하는 신의 한수가 되었다. 


마침내 1591년 2년만에 종 6품에서 정 3품이 된 이순신은

전라 좌수사로 임명받는다.


이때 이순신은 거북선을 건조하며

실전과 같은 맹훈련을 실시하며 전쟁을 준비했다.



임진왜란이 끝내 터지고


고니시.JPG [6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간 고니시 선봉부대에 이어서

일본군 후발대와 본대가 계속해서 
부산에 도착하여 북상하고 있었다.


허나

이들의 진격속도를 늦춘 것은 배고픔이었다.



경상도를 지나 서울로 북상하는 길에는 
마땅한 평야도 없었기에 먹을것이 충분하지 않았고


무슨 연유인지 
본국에서 보급해오기로 한 식량이 오지않았던 것이다.



바다와 육지 동시에 함양으로 진격하려 했던 일본군의
수륙병진 전략단 한사람의 존재때문에
전쟁초기부터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했다.


배고픔에 못이긴 일본군은 병량을 현지조달하기로 전략을 바꾼다.

호남의 식량을 차지하기 위해 발길을 돌리는 일본군




이 호남을 지키기 위한 전투들.


진주 대첩, 웅치-이치 전투, 금산 전투


임진왜란에서 가장 격렬한 전투들이

이 호남과 호남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 발생한다.




그 시각 조선의 바다는 


갓.JPG [6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이 남자가 지키고 있었다.













" 勿令妄動 靜重如山 "
물령망동 정중여산

가벼이 움직이지 마라, 태산과 같이 무거이 움직여라

- 조선 수군의 첫 승전, 옥포 해전 전, 충무공의 훈유







-7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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