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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주성치 1 493 5 0
한편 그 시각 한양 조정,





선조.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왜구의 소문이 한양에 까지 퍼지고 난 뒤,
한양의 백성,관리들이 크게 동요했다.

피난중 헤어질까봐 자기의 가족을 밧줄로 묶어
피난을 가는 백성도 있었으며,

백성들이 아무도 말을 듣지 않아 통제가 전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선조는 이들에게 한양에 남을것이라고
급히 달래었다.


4 29종실의 군()들이 통곡하다.

   임금이 한양을 버린다는 소문을 듣고 해풍군(이기(李耆등이 대궐로 찾아와 통곡하며 한양 사수를 외친다.

선조 임금은 종친과 왕자들의 이같은 이야기에  

가지 않고 마땅히 경들과 더불어 목숨을 바칠 것이다."

고 일단 여론의 예봉을 피해 본다


- 선조실록 2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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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한양을 사수할지 혹은잠시 북쪽으로 피난을 갈지 신하들끼리 서로 의견이 엇갈리다가 
 상주와 충주의 패전을 직접 목격한 순변사 이일의 장계가 도착하게 되는데,
 당시 궁궐에 등불 키는 군사들도 다들 도망 가버려서 선전관청에서 횃불을 얻어 겨우 이일의 장계를 읽었다


"오늘 내일 중으로 왜적들이 한양에 들이 닥칠 것이다."

-<재조번방지>의 기록




신립이 탄금대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은 선조와 조정대신들은

상황이 너무 좋지 않게 돌아가고 , 백성의 민심도 다룰수 없게 되자

언쟁을 거두고 합심하여 피난결정을 내린다.



임금이 한양을 버릴 준비를 하자,

궁궐의 하급 호위병들은 모두 도망하였다.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대궐문 또한 제때 닫히지 않고 열려있었다.

(조선역사상 대궐문이 실수로가 아니라 이렇게 방치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마침내

일본군이 경기도에 진입했다는 소식까지 들리자.



명에 지속적으로 원군을 요청함과 동시에

한양의 백성과 종묘사직을 뒤로한채



4월 30일,
임진왜란 발발 보름만에



결국,

조정일행과 함께




몽진.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몽진에 오른다.
(임금이 난리를 피하여 피난을 가는 일)





몽진3.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하늘이 천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일까, 

저녁 11시~새벽 1시

피난길을 향해 궁밖을 나서는 시각

하늘은 칠흑같이 어둡고 비가 세차게 내렸다.


마치 하늘이 통곡하는 듯 했다.





  "마침 비가 세차게 내리고 밤은 칠흙같이 어두웠으며 선조 임금은 단지 두서너 명의 젊은 내시와 함께 마루 방에 앉았고 주변에서는 무뢰한들이 궁궐로 난입하여 거리낌없이 궁궐의 보화를 약탈하였고 시녀들은 맨발에 옷(외출복)을 벗고혹은 눈물을 흘리고 혹은 통곡하면서 궁문을 흩어져 나오고 곡성이 하늘에 사무쳤다" 

임진일록







몽진2.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선조는 개성,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간다.


허준.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선조의 몽진 기간중 
선조옆에 철썩같이 붙어 보필한 인물이 있는데,

조선의 명의 '허준' 이었다.

그가 임진왜란 발발 4년후에 편찬한 책이 바로 [동의보감]이다.




"재상도 곁에 없고, 신하들도 없는데, 허준과 하인 두명만이 내곁에서 나를 보필하는 구나"

- 몽진기간 중 선조




도성.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타들어.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나랏님과 조정대신들이 한양을 버리고 가는 모습을 본 백성들과


한양을 버리고 

열악한 몽진 길에 오른 선조의 마음은 분명 타들어 갔을 것이다.

불탐.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불타는 궁궐을 바라보는 선조




 ​"임금의 행차가 성을 나서니 난민들이 맨 먼저 장예()(掌隸院노비 판결부서)과 형조(刑曹)를 불질렀다.
 이 두 곳에는 공사노비(公私奴婢)의 문서(노비 증명서)가 있는 까닭이다.
 또 내탕고(內帑庫왕실 개인금고)에 들어가 금과 비단 같은 것을 끌어냈으며 
경복궁ㆍ창덕궁ㆍ창경궁을 불질러 하나도 남겨두는 것이 없었다
역대로 내려온 보화ㆍ귀중품과 문무루(文武樓)와 홍문관에 쌓아둔 서적승문원 일기가 모두 타버렸다
(중략)
모두 왜적이 오기 전에 우리 백성들에 의해 불타버렸다."

 유성룡의 서애집
(반면,왜군이 한양 도성을 불질렀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한양.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한양에는 우의정 이양원이 수성대장으로 남았으나, 

워낙 넓은 한양 도성은
수성에 적합한 성이 아니었다.


이를 물리치고 한양을 점령한 일본군.



그런데,

임금이 몽진을 떠나 텅빈 궁궐에 도착한 일본군은 

적잖히 당황했다.



선조가 자신들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신속하게 도망갔던 것이다.



한양을 점령한 시점에서 조선을 삼킬수 있을줄 알았던



일본군의 계획이 처음으로 틀어지는 순간이었다.






반격.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이 시점이, 조선의 반격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밍.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그리고 

조선의 원군요청에 응답한 명나라. 

조선에 군대를 파견한다.




명나라는 대체 왜 조선에 원군을 보내주었을까?


만쥬.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당시 만주에 있는 만주족은

명나라가 점점 약해진다는 것을 알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의 원군요청.

한달도 채 안돼 한양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명 황제는 처음에 거짓말인줄 알고 의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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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예전에 몽골군도 물리치고, 당태종도 물리친 나라가
한달만에 수도가 떨어졌다는 게 말이 되느냐?
너희들이 짜고, 명나라 군대가 원군으로 가면 
합세해서 덮치려는 것이 아니냐"


명나라는 충분히 의심할 만 했다.

왜냐하면 

고려-조선은 군대가 강한나라로
예전부터 평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 나라 조정에서도

조선이 무너지고
일본이 후금(만주족,청)과 연합하면,

명 나라의 존립자체가 위험해진다는 위기론이 생겨났다.




사태를 소상히 파악한 명나라는 

그렇다면,' 만주로 못들어오게 압록강 밑에서 왜군을 막아야 된다' 라는 전략을 세우고

명나라 군대를 조선으로 파병한다.

'왜군을 조선에서 저지하자' 라는 것이 
명나라의 생각이었다.




하여 꽤 강한 부대를 조선에 보내는데,



이여송2.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이여송.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먼저 이여송이 온다.



하지만, 그들도 강력한 일본군에 대항해 잘 싸우지는 못했다.

일본군이 그만큼 강했던 것이다.




그러니
할수없이 명나라는

왜구를 전문으로 상대하는 전문부대를 파병한다.



척계광.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그 부대가 그 유명한
척계광이 만든 절강성 부대이다.




야사이긴 하나, 

이 절강성부대가 나타나면 웃지말라고 하는 방이 붙었다고 한다. 



왜구를 전문으로 때려잡는 부대가 명에서 파병 온다기에 

조선의 백성들이 잔뜩 기대를 하고 보았는데,



마주한 척계광의 절강성부대는 황당한 무기 두개를 들고있었다.


원앙진.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요놈            
 
첫번째로는 
가지를 치지않은 대나무를 손잡이로 사용하는 병기인 낭선이었다.




조선백성이 보기에,
죽창이라고 하면 차라리 이해를 하겠으나,


이것은 죽창도 아닌것이 가지가 그냥 달린 대나무였다.



그러니 조선백성들은 까무라치게 웃을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이걸로는 , 저 강한 왜군이 아니라, 누렁이도 못 때려 잡겠다.하하하 "



두번째로는
삼지창이었다.


삼지창은 공격무기가 아니다.



삼지.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그리스신화 포세이돈의 무기인 삼지창.


자세히보면, 이건 무기가 아니라

생선 잡아먹는 포크이지, 싸우기 위한 무기가 아니다.


포졸창.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사극에서 포졸들이 들고있는 창으로 우리눈에 익숙한 삼지창은

보통사람이 생각하기에 창날이 3개 달린 창으로

일반 창보다 훨씬 좋을 것이라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삼지창이 무기가 아닌 이유는 따로있다.



창은 원래 일자여야 한다. 


점 공격을 하는 창은 
힘이 한점에 집중되어 관통하기도 쉽고

점 공격이어서 쉽게 막기도 힘들어

방패나 칼로는 쉽게 막지 못한다.


반면,

삼지창으로 찌르면

눈감고 칼 하나만 대고 있어도 

삼지창이 칼에 걸리는 구조인 것이다.



그렇기에 삼지창은 찌를수 없는 창.

공격용이 아닌, 방어용인 것이다.



그래서 조선의 백성들이 절강성 부대를 보고

박장대소 했던 것이었다.


원앙진.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척계광이 만들었던 원앙진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왜구가 워낙 칼싸움을 잘하니,

대륙의 자원인 많은 인구를 이용하여 왜구에 대처한 것이다.

애하나를 키워서
사무라이랑 맞서 싸우게 하려면,

20년의 훈련기간이 필요했다.





머리.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머리!머리! 허리!허리!
 

그게 불가능하니,

사람을 12명을 뽑아
마치 한 몸인 것처럼

한사람이 두세번하는 동작을 나눠서 하도록 만든 것이다.


즉, 저 12명은 한사람이 나눠서 하는 구분동작을

각자 맡아 그것만 하는 진법이었다.

막는애는 막기만하고 찌르는 애는 찌르기만하는 식이었다.


12명이 한 조가 되어

한 사람 몫을 하게 하는것.


삼지창과 낭선(대나무)는
일본도를 막는 방어용이었다.


취권.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오른쪽 사람 술많이 취함...)

무협영화에서 
칼을 휘두르는 적을 상대로 앉아있던 의자를 들어
의자의 다리로 검격을 막듯,
대나무 가지에 그런식으로 걸치도록 했던 무기였다.




혈투.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조,명 연합군은 한양에 이어 함락된 평양성을
다시 수복하기 위해 혈전을 치른다.


공세.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총 공세를 퍼붓자. 마침내 고니시 부대가 퇴각한다.



하냥.JPG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한편, 일본군이 한양을 점령해 종전짓지 못한 순간부터 , 

전국 각지에서 역시,

의병과 영웅들이 출현하여
반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조선의 저력,

이것이 일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간과한 것이었다.






일본군은 조,명 연합군이
한양을 탈환하려는 기세를 막기위하여
조선을 한번 혼쭐낼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그 장군"에 의하여

그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데...





-6편에 계속

1 Comments
깐깐징어 2019.02.13 15:09  
커맨드센터 띄워버렸자너

럭키포인트 1,502 개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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