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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주성치 0 448 2 0
700여척을 이끌고
음력 4월 13일에 부산에 도착하여

부산포로 들어온 일본군







보물 제 391호 부산진 순절도

다음날인 14일, 정발 장군이 있는

 부산진성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정발.JPG [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정발 장군 동상


"남아가 세상에 나서 마땅히 전쟁터에서 죽을 뿐이지 구차하게 도망하여 목숨을 건지겠느냐. 
나는 이 성의 귀신이 될 것이다."

- 성이 함락될 위기, 부하의 피난권고를 거절하며



부산진3.JPG [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부산진성2.JPG [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김윤겸 '영가대'
부산진성.JPG [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부산진성4.JPG [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정발2.JPG [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일본군은,

흑의장군 정발이 지키는 부산진성과 

(정발은 병력,식량,무기등 모든것이 부족했으나
 1000여명의 병력으로 18,000여명의 선봉대에 맞서 부산진성 전투를 치른다.)

새벽 5시- 7시 / 낮 10시-12시


두번에 걸친 전투로

4시간 만에 부산진성이 함락되었다.


정발 장군은

1차 방어선인 이곳 부산진에서
시간을 벌어줘야 했기에,

피난하여 후일을 도모하는 것을
거절하고

끝까지 항전하며 
1차 방어선을 지키는 사내의 책임감과 절개를 보여주었다.

결국

정발은 총탄에 맞아죽었고,

순사의 정신이
부산진 성내의 군민들에게 깃들어

3천의 군민들 모두 함께 결사항전하였으나.


모조리 죽고 학살당하였다.)




부산 송상현 광장
동래1.JPG [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동래부사 송상현이 지키는 동래성일거에 함락시켰다.





동래부순절도.JPG [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보물 제 392호 동래부 순절도
 
동래부사로 승진한지 갓 1년만에 송상현은 동래성전투를 치른다.

동래에 쳐들어온 왜군이

목패에 

戰則戰矣 不戰則假道 
전즉전의 부전즉가도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으면 길을 빌려 달라" 
를 새겨 보여주자,


송상현은 그 화답으로
목패에


戰死易 假道難 
전사이 가도난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를 새겨 왜군에게 보여주었다.


격렬히 왜에 항전하다.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갑옷 위에 관복을 입고 북쪽의 임금께 절을 올린 후 
성문의 누각에 단정히 앉은채 
왜병에게 피살되었다. 

적장이 그의 충절에 탄복하여 송상현을 살해한 자기 부하를 잡아 죽이고, 
일본장수인 소 요시토시 등이 그의 충렬을 기려 동문 밖에 장사를 지내 주었다.  


임진왜란.JPG [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빠르게

부산을 장악한 왜군은

3군으로 나뉘어 북진을 개시한다.



제 1군

고니시.JPG [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고니시 유키나가
 

고니시를 선봉으로 하는 1군은 
부산,밀양,대구,상주,문경을 거쳐 충주에 이르고


제 2군

가토.JPG [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가토 기요마사
 

가토가 이끄는 2군은 울산,영천을 거쳐 충주에서 1군과 만난 뒤,

한양으로 진군한다.


제 3군

구로다 나가마사.JPG [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구로다 나가마사

구로다가 이끄는 3군은 김해를 지나

추풍령을 넘어 북진했다.
 


임진왜란의 본격적 시작이 된

부산진 성의 전투.



그로부터 10일 후인
음력 4월 24일 



상주.JPG [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상주2.JPG [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경상도 순변사 이일상주에서 왜군에게 패하여

단 10일 만에 경상도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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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한양까지 왜군의 평균 행군속도는
하루 20KM였다고 한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았던 이 시절, 이 정도 속도는

거의 그냥 직진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



이런 빠른 진격이 가능한 배경은 무엇일까?



왜군은 사실 전쟁초기부터,

조선의 전략,전술체계,
어디에 뭐가 있는지 까지 전부 알고있었다.


동원체제였던 조선은 1차 방어선에서 막는 동안, 
2선에서 병력이 집결하여 
방어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일본군 전략은,

조선의 2진 방어망이 갖춰지기전에
속전속결로 부산성을 깨뜨리고

병력이 집결하는 곳에 먼저가서
병력을 모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가 옛날에는 '조선군이 모이다가 싸우지도 못하고 도망갔다.' 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고,

모여서 편제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곳에 
왜군이 들이닥쳐 붕괴시킨 것이다.


또 하나, 일본군이 속전속결 전략을 쓴 이유는,



전국.JPG [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전국시대를 거쳐온 일본은

영주(다이묘)만 잡으면

승리하는 전쟁방식이었다.


 
그래서 왕을 잡고, 한양을 빨리 점령하면 
전쟁이 끝날것이라 생각하고 수도로 달린 것이다. 






일본은 진군초기에

척후병을 보내 정찰을 해봤지만, 전혀 발견되지 않는 조선군.

조선군이 발견되지 않자, 조선의 함정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당황하지만,

곧 정말 조선군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쭉 한양까지 밀고 올라갔다.


나흘.JPG [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선조추정.JPG [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선조로 추정되는 초상화
 

왜가 부산을 침략한지 나흘만에 그 소식을 듣게 된



조선의 임금 선조




당대 조선 최고의 명장

'삼도 순변사'에 임명하여 전세를 역전 하고자 하는데.....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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