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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국가와 결혼한 여왕,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다. 엘리자베스 1세

주성치 0 297 7 0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다"

-서양 속담








영국이 살 길을 찾아 바다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영국의 해양술,함대 전투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북해.JPG [3편]국가와 결혼한 여왕,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다. 엘리자베스 1세

영국이 주로 활동하는 바다인 북해는 유럽에서 제일 험한 바다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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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해안선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남해와 같이 험한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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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소용돌이

 

이런 바다에서 항해를 하고 다니려면 항해술이 발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면, 스페인의 앞바다는 북해에 비해 잔잔했다.

범선.JPG [3편]국가와 결혼한 여왕,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다. 엘리자베스 1세

특히 영국은 돛으로 움직이는 범선의 항해술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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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은 밧줄의 예술이라고도 불릴정도로

밧줄이 많은데,영국의 범선에서는 이 수십,수백개의 밧줄의 이름이 전부 달랐다고 한다. 


배의 밧줄에 전부 다른 이름을 붙이고 조절하는 훈련을 했던 
영국 해군의 범선 항해술은 상당히 정교했다.


영국을 괴롭히는 험난한 바다인 북해가

역설적으로

영국이 해상국가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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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걸고 일할 선원이 많았던 영국은

바다에 나가 침몰되고, 죽고, 다른 국가 해적들에게 털려가면서

바다에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이 들은 돈을 모아 투자를 하여 항해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 항해가 성공하여 인도에 가서 한 몫 단단히 챙겨 올 수도 있었지만,

이 당시의 항해는 굉장히 죽을 확률이 높은 위험한 행동이었다.


좋게 말해

꿈과 모험을 찾아 떠나는 시대


사실은, 모 아니면 도

목숨을 걸고 떠나는 선원의 시대였던 것이다.



유럽에서 제국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한 스페인.

하지만, 의외로 스페인의 재정상태는 좋지 못했다.

저항.JPG [3편]국가와 결혼한 여왕,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다. 엘리자베스 1세
 
이유는 네덜란드를 식민지화 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기 때문인데,
네덜란드인이 격렬하게 저항한다.


이 전쟁자금을 대느라 남미에서 들어오는
막대한 부가 다 빠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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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영국이 해상강국으로 발뻗어나가기 위해서는

바다를 호령하고있던 에스파냐를 견제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던 잉글랜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페인을 약화시키기 위해

네덜란드를 지원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니,

스페인은 점점 더 영국에 열 받아 가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은 더욱 에스파니아를 도발했다.


상선.JPG [3편]국가와 결혼한 여왕,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다. 엘리자베스 1세
 
영국의 드레이크라는 해적이 끊임없이
에스파니아 상선을 약탈하니,


펠리페 2세는 잉글랜드를 외교적으로 강하게 압박하며,
대사를 보내
해적 드레이크를 잡아 처벌하라고 하는데,


엘리.JPG [3편]국가와 결혼한 여왕,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다.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1세는 
에스파니아 대사의 앞에 드레이크를 불러오더니

에스파니아에 뒷통수를 날리며

대사들이 보는 앞에서


기사.JPG [3편]국가와 결혼한 여왕,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다. 엘리자베스 1세
 
해적 드레이크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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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이 본국의 펠리페 2세

귀에 들어가니 그는 울화통이 터졌다.


하지만, 펠리페 2세는 당장 전쟁보다는 회유책을 쓴다.


당시, 영국의 국교가 하나도 통합되지 않았던 상황.

펠리페 2세는 처녀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게 편지를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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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과 결혼해줄테니, 나한테 오시오' 라고 말한다.

펠리페 2세는 자신의 제안을 당연히 거절할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제안에는 뒷 사연이 있었다.

사실, 펠리페 2세는 영국여왕과 결혼한 적이 있었다.

종교개.JPG [3편]국가와 결혼한 여왕,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다. 엘리자베스 1세
 
종교개혁이 났던 이 시절,



헨8.JPG [3편]국가와 결혼한 여왕,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다. 엘리자베스 1세
 
영국의 헨리 8세에게는 

8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그 중 2명은 처형당하고,

아내.JPG [3편]국가와 결혼한 여왕,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다. 엘리자베스 1세

에스파냐인 이었던 첫째 아내와는
아들 못 낳는다는 문제로 이혼,

가톨릭에서 이혼은 안된다며 이혼을 안해준다고 하니,

헨리 8세는 가톨릭을 끊어버리고, 영국 국교회를 만든다.



영국 내 가톨릭 신자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결국 신교VS구교 간에 종교전쟁이 난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헨리 8세가 죽고 이어서 그의 아들도 조기 사망하자,


첫째 왕비였던, 캐서린의 딸

블러드.JPG [3편]국가와 결혼한 여왕,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다. 엘리자베스 1세
 
메리 튜더가 여왕으로 즉위한다.

즉위 후 가혹한 신교탄압으로 

메리는 블러드메리 라고 불리는 여왕이 됬다.


이 메리 튜더가 사실 펠리페 2세랑 결혼을 했었던 사이였다.


메리는 가톨릭의 지원을 받기위해 
최강의 가톨릭 국가인 에스파니아와 결혼을 했는데,



그녀는 펠리페보다 11살 연상이었다.


하지만

초상화를 보고 그녀를 괜찮게 생각했던 펠리페는 

막상 가서 얼굴을 대면하니, 다소 어두운 분위기에 나이도 11살 많고,

메리.JPG [3편]국가와 결혼한 여왕,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다. 엘리자베스 1세
사진빨에 속지말자
 
초상화가 사진빨이라는 것을 알게 된 펠리페 2세

심지어 별명은 '블러드 메리'였다.


(반면 펠리페 2세의 훤칠한 외모를 본 메리는 그를 좋아했다고 한다.)



실망한 펠리페 2세는
결혼 후 재빨리 스페인으로 런했고,

메리는 그를 애타게 오라고 불렀다.


그러는 동안 

펠리페 2세가 에스파니아 국왕으로 즉위하고
메리는 얼마 못살고 사망한다.

엘리.JPG [3편]국가와 결혼한 여왕,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다. 엘리자베스 1세
 
그 메리의 뒤를 이어 즉위한 여왕이 엘리자베스 1세였다.



엘리자베스 1세

펠리페 2세의 혼담을 단칼에 모욕적으로 거절해버린다.
(청혼을 위해 온 스페인 사신을 홀대,타박)


유럽최강의 국가로 떠오른 스페인의 국왕이자,
유럽의 미남이었던 자신을

경제적으로 어려운, 낙후된 지역이라는 인상의 잉글랜드 여왕이 
모욕적으로 거절해버리자



펠리페는 정말 슬슬 꼭지가 돌기 시작했다.







펠리페 2세'여자가 너 뿐인줄 아냐' 라면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펠리페2세 2.JPG [3편]국가와 결혼한 여왕,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다. 엘리자베스 1세
 
그런 펠리페 2세의 눈에

엘리자베스 1세를 열등감에 빠지게 했던 여자가 들어오게 되는데.....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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