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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의 운명을 바꾸다. 오를레앙의 성녀 '잔다르크' -7- 마지막

주성치 4 1025 17 0
헨리5.JPG \

1415년 다시 프랑스에게 도발을 하는 영국왕 헨리 5세,

그는 프랑스 왕에 대한 권리를 주장함과 동시에
노르망디 영지를 재탈환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다시 침공한다.


야심가였던 헨리 5세는 내정에도 수완을 발휘했다.
민란과 페스트(흑사병)의 창궐로

흑사.JPG \
의사.JPG \

상당히 어지러웠던 영국을 침착하게 수습하고

무려 1만명의 군대를 소집했다.

궁수,보병 8000
중기병 2000

이때 당시의 중기병 2000기는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중기병 2천기는 요즘으로 치면 거의 2만군대 정도 수준이라고 한다.)

앙리5.JPG \

 

노르망디.JPG \

그렇게 해서 헨리 5세는 이들을 이끌고 노르망디로 상륙하여 

하르푸르라는 성을 점령한다.



흑.JPG \
흑사손.JPG \

 
여기까지는 좋았으나... 전염병이 돌아 병력의 1/3이 사망한다.


병력이 갑자기 줄어 
뭘 해보기가 애매한 상황..


헨리 5세는 이유는 불명확하지만,
영국군이 점령중이었던

칼레로 행군하기 시작한다.




그 소문을 들은 프랑스군 또한 칼레로 병력을 모아 행진하기 시작했는데,

가던 도중 어디선가 두 군대가 만나

대격돌이 벌어진다.



이것이 바로 백년전쟁 최대의 전투 아쟁쿠르 전투이다.





이때 당시 헨리 5세가 데리고 온 영국 장궁병들은,
최정예 중의 최정예 궁병이었는데,



프랑스군의 조급함이 다시 한번 그들을 스스로 망친다.

전투가 시작되자, 프랑스군은 


제노바 석궁병들에게 다시한번 전면공격을 지시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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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칼레로 가느라 파비스 방패를 가지고 오지 않았던 제노바 석궁병들은 
방패를 재빨리 가져오도록 시키지만,

막상 영국군과 마주친 프랑스군은 
그때까지 언제 기다리냐며 전투를 개시해버린다.
 

휴전의 기간동안 이전 전투의 교훈을 잊었던 것이다.




제노바 석궁병대가 앞에 나오자

영국 장궁병들은

그 동안 연습했던 45도 곡사로
직사인 석궁보다 1.5배 긴 사거리를 자랑하며

제노바 석궁병대를 궤멸시켜 버린다.

사거리 뿐만 아니라 당시 제노바 석궁은
태옆식 장전이라 1발 장전에 10~15초가 소요되었다.

헌데 숙련이 잘된 영국 장궁병들은 5~6초당 1발씩 쐈으니
연사력에서 3배 가까운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더 문제는 프랑스 지휘부는 본인들의 잘못이 뭔지 자각하지도 못한 상태로,

제노바 석궁병들이 전멸을 피해 후퇴하자
전부 잡아서 처형시켜 버린다.


이어서 프랑스군은 
이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기사를 돌격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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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다시한번 영국군의 궁병과 보병의 협동전술이 발휘되면서
프랑스군이 다시한번 속절없이 당한다.



왜 이런 실수의 반복이 일어났을까?


이 것이 봉건제 군대의 최대 약점이었다.


영국처럼 장교층이 있는
체계적 교육속의 근대적 군대는
전투 경험이 전달이 가능했으나,


봉건제 군대는 전투경험이 단지 
개인의 경험으로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투경험의 전달이 거의 불가능했다.


병자호란,임진왜란도 마찬가지지만,

기록으로만 남겨놓지,

싸운 사람들은
전투해서 패배하면 그 전투의 경험을
자식에게 공유하지 않거나, 자신의 무공을 과장하고 합리화하려는 습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후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내가 그때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텐데' 정도의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승리의 전쟁사 보다.
실패의 전쟁사를 정확히 알고 새겨놓는 것이 훨씬 중요한 법이다.


(미국군 같은 경우에는 사관학교에서 자기들의 패전일도 기념일로 지정해서 기억한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사관학교는 들어가면 가장 먼저 패배한 전투, 실패했던 전투부터 가르친다고 한다.) 




이 아쟁쿠르의 전투 이후, 

프랑스의 운명이 그야말로 풍전등화에 상황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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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헨리 5세가
아쟁쿠르에서 프랑스군대를 박살내고 
프랑스군의 영토를 대부분 함락시키고
오를레앙으로 쳐들어가면서 

프랑스의 대위기가 찾아온다.

거기다 큰 전투의 패배로 , 
프랑스 또한 자체적으로 분열이 시작된다.

프랑스의 귀족세력 VS 프랑스 왕의 극명한 대립속에
나타난 헨리 5세는 이 프랑스 귀족하고 연대를 꾀하며

그야말로 잉글랜드의 왕인 본인이 직접 프랑스왕 까지 먹고 
영국프랑스를 통일 해버리려는 야심까지 실현시키려 하고 있었다.


프랑스가 잉글랜드로 바뀌고 , 전부 다 영어를 써야 될 상황이 되어버리는



프랑스의 진짜 대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프랑스의 진짜 위기 상황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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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괴도 잔느)



'구세의 성녀'

'프랑스의 성 처녀'

'오를레앙의 성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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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 다르크 " 
Jeanne d'Arc " 




잔4.JPG \
 
라틴어로
"아르크의 요안나"


이다.


1429년 잔 다르크가 나타나 이런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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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교회쪽에서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라며 당시에 있던 샤를 왕자를 찾아가서 군대를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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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의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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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절박 했던 프랑스의 샤를 7세는

이 어디서 나타난지도 모를
17~18세의 어린 여인에게 걸어보는 것 이외엔
딱히 뾰족한 수도 없었기에, 
한 줌도 안되는 소규모의 군대를 주고 능력을 보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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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를레앙에서 잔 다르크

소수의 군대를 이끌고 나가 정말로 영국군을 격파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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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레앙으로 개선하는 잔다르크  -장 자크 셰러
 

그렇게 위기에 빠진 오를레앙을 구하며,

전 프랑스의 영웅으로 잔 다르크가 떠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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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에 대해서는 수많은 소문들이 있다.

아무리 중세라지만, 어느 왕이 17~18세의 소녀에게 군대를 주며,
어떤 기사가 그 소녀의 밑에 들어가서 싸웠을까?

상식적으로 납득이 전혀 되지 않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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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원래 왕족이었을것이다.'
'죽은척하고 빼돌려서 사실은 처형당하지 않은것이 아니냐'
' 그냥 프랑스군이 사기를 돋구기 위해 세운 상징적 인물이 아니냐'


이 처녀를 둘러싼 얘기는 워낙 미스터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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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분명히 잔 다르크가 이 시대 등장해서 활동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헌데, 과연 ' 이 잔 다르크가 전투에서 실제로 핵심적인 역할을 했는가? '

이부분이 역사가들의 논쟁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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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대세 의견으로는
 
'잔다르크가 맨 앞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돌격함으로써 기사들이 사기가 충천하여 싸웠다.'

이지만

최근들어서는 ' 잔다르크가 통솔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수준급 전략가였기도 하다 '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성 처녀인 미성년 어린 소녀가 국가의 위기상황에
깃발 하나들고 선두에 서서 돌격하는데
그 기사도 정신에 어떤 남자가 영국군을 두려워하며 후퇴하리..
(최고의 버퍼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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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실제로 정말 용감하게 싸웠다.

성벽을 올라가면서 돌에 맞으면서도 기어 올라가고, 전투중 화살을 맞기도 하며 부상도 많이 당했다.



파타이 전투에 승리 하고 뒤이어 파죽지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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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의 랭스 입성 -얀 마테이코


트루아까지 함락 시키면서 브루고뉴 지방을 공격하고

이반했던 프랑스의 도시들을 다시 프랑스 동맹에 복속시키며

랭스로 진군하여 도시로 입성한다.

이어서

샤를 7세가 프랑스 왕에 오르게 되면서, 
영국 헨리5세의 프랑스 왕 후계 욕심이 물거품이 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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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팽 샤를의 대관식에서 잔 다르크는 

 “폐하, 이제 프랑스를 다스리는 진정한 국왕이 되셨습니다.”

라고 말하며,

불안에 떠는 백성들에게는 격려 편지를 쓴다.


"여러분은 머지않아 도시가 잉글랜드군에게 포위될 것이라는 불안한 마음을 저에게 편지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적군과 마주치는 한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적이 먼저 공격해 오면 성문을 굳게 닫고 제가 올 때까지 안심하고 기다려 주십시오. 설사 도시가 포위되더라도 반드시 적들을 격퇴하여 도시를 해방시킬 것입니다. 오늘 쉴리에서 여러분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만, 이 편지가 적의 수중에 들어갈까 염려되어 이만 줄입니다." 

-1430년 잔 다르크



그렇게 싸우던 잔다르크는 부르고뉴-잉글랜드 연합군과 다시 싸우다 잡혀 포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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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7세
 
하지만 샤를 7세는 잔 다르크를 위해 포로협상을 하지 않았고,

잔 다르크는 그대로 끌려가 종교재판으로 화형을 당하게 된다.
(샤를 7세가 욕먹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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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대성당의 잔다르크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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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화형을 당했을까?


잔 다르크와 실제 전투를 함께 하면서 , 
같이 한 기사들은 유력한 기사들을 포함하여
그녀를 존경하며 잔 다르크의 팬이 되었다고 한다.

잔 다르크가 리더십이 있긴 있었던 모양.


이를 샤를이 위험하게 생각해 누명을 씌워 영국군에게 넘겼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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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녀에 대한 재판은 이단성 시비여부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신성을 사칭했냐 아니냐가 아닌,
정치적 이유로 열린 것이다.

샤를의 반대파에게는 잔다르크는 샤를을 즉위시킨 웬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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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형당하는 잔다르크 - 쥘 외젠 르느뵈
 
그녀는 이렇게 함부로 신의 계시를 사칭한 이단으로 
마녀로 취급되어 화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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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화염에 휩싸이면서도 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의 구원을 믿었다고 한다.


헤르만스.JPG \헤르만 스틸케의 작품
 

그녀는 죽고 난 이후 가톨릭 교회에서
명예회복을 받고 성녀로 추대된다.



장기전으로 갈수록 힘들어지는 영국.

잔다르크는 비록 죽었지만
덕분에 전세를 역전시키게 된 프랑스는
파리를 재탈환 하며

사진.JPG \
 
이어서  노르망디까지 재탈환, 3년 뒤에는
영국이 점령한 대부분의 지역을 다시 장악하면서
1453년 칼레 마저 탈환을 한다.
(칼레는 영국에서 프랑스땅으로 넘어가는 최단루트였다.)


이렇게 영국이 물러나며 
100년 전쟁이 막을 내리고,
영국땅이 완전히 섬나라로 밀려난다.



프랑스가 단합했더라면 일찌감치 끝날 전쟁을 
내부분열로 100년이나 끌어버린 것이다.

백년전쟁, 이 이후로 영국과 프랑스는 적대적 국민감정을 가지게 됬고,
19세기까지 크고 작은 전쟁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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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백년전쟁으로 혼합왕국인 앙주 제국에서 
완전히 다른국가, 프랑스와 영국으로 명확히 나뉘게 되었고,

역사적으로 보면 봉건제가 끝나고 
강력한 중앙집권제가 탄생하며 기사들의 시대가 종료된다.

군사적으로 보면 전문 군인의 시대가 도래했다.(기사 사병군대에서 국가의 군대로)

국제적으로 보면, 부유했던 영-프가

100년간의 전쟁으로 인해 모든 산업이 정체되면서

돈이 필요해지게 되는데


돈을 빌리기 위해 이탈리아에 손을 뻗기 시작한다.

그러자 이탈리아 금융업자들이 순식간에 부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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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그 유명한 메디치 가문이 뜬다.

인구 8만도 안되는 작은 도시의 은행장이 
프랑스 왕비까지 만들어낼정도로 급성장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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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르네상스 시대의 원인중의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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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전쟁을 겪으며 역사가 발전한다."

이렇게 중세가 저물고 근대가 시작되기 시작한다.




그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 오를레앙의 성녀 '잔 다르크'가 한 획을 그은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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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향한 바람직한 신념이 없을때, 인간은 하찮은 것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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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종종 진실을 말하며 죽임을 당하지만,나는 두렵지 않다 이 일을 위해 태어났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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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일어나라, 오늘 일어난 것보다 일찍, 내일을 행하라, 오늘 행한것 보다 더 많이. 할수 있는 한 언제나 최선을 다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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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을 들고 선두에 서서 프랑스인들에게 사기를 북돋아줬던 그녀는
프랑스인들에게 승리의 여신, 행운의 여신, 고귀한 전투의 상징으로써
프랑스인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구세의 성녀, 잔다르크 끝.

4 Comments
와우땡잡았으 2019.01.23 17:02  
정주행했어요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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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연 2019.01.24 17:49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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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가네떡볶이 2019.01.24 19:41  
재밌네요. 근데 마지막 유명한 저 그림에선 사람들이 총도 갖고 있는데 100년 전쟁에서 총도 쓰였나요?

럭키포인트 4,926 개이득

춰컬릿 2019.01.24 22:00  
[@황가네떡볶이] 프랑스의 7월혁명 때 그림으로 알고 있습니다. 19세기 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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