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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의 운명을 바꾸다. 오를레앙의 성녀 '잔다르크' -6-

주성치 0 455 6 0
프랑스 왕과 기사들의 석방조건으로 어마어마한 조건을 내건 영국.


이것은 영국귀족들도 믿지 못 할정도의 조건이었다.



당시 노르망디 영지 내에는 프랑스와 영국의 소유지가 혼재되어있었고,
영국군이 점령한 성도 있는상태였다.



먼저 프랑스의 몇년치의 예산을 줄것, 

그리고 현재 프랑스군이 점령하고 있는 땅은 영국군에게 준다.
영국군이 점령하고 있는 땅은 프랑스에게 반환한다.



당시의 기사들은 영주인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영주들 입장에서는 너무도 황당한 조건이었다.
그러니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영주들,

돈이 모금이 될리가 없었다.



장2세.JPG \
 
그러자 프랑스 왕 장 2세가 나서서 본인을 석방시켜주면
자기가 직접 돈을 모아 주겠다고 한다.


영국은 기사도의 자존심을 믿고 장 2세를 돌려보내준다.



장 2세가 돌아오니 

그동안 장 2세의 아들이 돈을 조금 모아두고 있었는데

석방기념으로 국가적인 파티를 열어 그 돈을 전부 탕진 해버리고
 

다급하게 다시 기금 모금을 시작한다.





그런 상황에서 사건이 하나 벌어지는데,

장 2세가 석방될 때, 자신의 둘째아들을
약속의 증거로 대신 영국군에 인질로 두고 왔는데


귀족은 인질이라도 대우해줬던 중세,



영국군이 점령했던 '칼레 안에서만 있는다면 무슨 짓이든 해도 좋다' 라고 허용해준다.

하지만, 장 2세의 둘째 아들은 푸아티에의 시골여인과 눈이 맞아

결혼을 하겠다며 협상조건을 어기고 칼레 밖으로 나간다.


중세결혼.JPG \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프랑스왕의 둘째아들은 
결국 연인을 따라 칼레 밖으로 나와 결혼해버린다. 



이 소식을 들은 장 2세, 
노발대발한다.

'이게 내 명예를 더럽히는구나, 약속을 했는데 니가 감히!'


아들의 약속위반에 명예를 실추당한 장 2세는

스스로 영국군 진지로가서 포로가 된다.

(장 2세가 중세했다!)


결국 장 2세는 영국으로 가서 런던에서 살다가 거기서 생을 마감한다.


장 2세가 런던에 가니 
프랑스왕에게 잘보이고자 한 영국 귀부인들의 관심을 한번에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영국귀족들이 왕에게 가서 
장 2세 에 대한 석방요청을 했을 정도라고 한다.


장2세.JPG \
장 2세

이것이 그에대한 후세의 평가다.


" 아버지보다 더 어리석었고, 더 처절하게 기사도 관념에 물들었었다. 그는 병적으로 의심이 많았고 모든 것을 반란과 연관시켜 생각했다.
그는 보통때는 나약하고 우유부단하면서도 이따금 갑자기 놀라운 정력을 발산시켜 자신의 개인적인 용기와 기사로서의 명예에 대한 돈키호테의집착뿐이었다. 왕으로서 그는 완전히 무가치 했다. "




샤를5.JPG \


뒤이어 즉위한 프랑스의 왕은 샤를 5세 였다.

장 2세에 비해 훌륭한 왕이었던 샤를 5세는



국내가 엉망이니 먼저 내치부터 시작하자 라고 마음먹고 

내치에 집중한다.


선동.JPG \

아키텐 귀족을 선동하여 영국에 반기를 들게 한다.

그래서 양국이 다시한번 전쟁을 재개하게 되는데,


왕자.JPG \

흑태자의 동생 이 이끄는 영국군이 다시 프랑스를 침공하자

샤를 5세가 이를 격파해버린다.




그리고 또하나




해전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던 영국을 

프랑스해군과 카스티야의 해군이 동맹을 맺고

해전에서 영국을 격파한다.




이것을 계기로 프랑스는 그동안 영국에 빼앗겼던 프랑스의 영지 상당 부분을 회복한다.


땅.JPG \

휴전.JPG \

프랑스가 영지를 회복하는 기간,


흑사병.JPG \

배로 자주 돌아다녔던 영국에선 흑사병이 3번이나 돌게되고, 흑태자 에드워드도 죽는다.

총인구 400만 정도 되었던, 영국에서 엄청나게 많은 인구가 흑사병으로 죽는다.
(최대 200만명 추정)



영국은 흑태자의 아들 리처드 2세가 왕위에 오른다.


흑사병의 창궐과 왕의 강력한 카리스마의 부재로 인해
영국 내에서도 부르주아,귀족,농민 계층들이 통제가 힘들어진다.


설상가상으로 터진 반란,


와트.JPG \


이렇게 되니, 잉글랜드가 정신을 못차리고 전쟁이 소강상태에 들어갔고

그를 틈타 프랑스가 재빨리 영지를 회복해 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영국-프랑스 사이에 1375년 휴전 협정이 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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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전쟁을 흔히 '기사도의 전성시대'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라이벌.JPG \

살라딘과 리처드 연속편에서 다뤘던 


"내년에 또 와라 기다리고 있겠다"
"저분과 같이 훌륭한 왕은 병사들과 같은 어깨높이에서 싸우면 안된다. 말을 보내드려라"



와 같은 살라딘과 리처드의 무용담 에 대한 일화가 유럽에 퍼지면서



이것이 유럽귀족사회에 하나의 로망으로 자리잡는다.


기사3.JPG \

그래서 이 시기 , 기사들이 각자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남들과 다른 말과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굉장히 재밌는 점은,



우리가 문명을 얘기할때,


초승달의 시대, 보름달의 시대라는 비유를 많이 쓰는데,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가는시기는 사회가 성장하는 시기,

보름달의 시대는 듣기는 좋지만 이제는 지는 일만 남은 시대이다.


그런데
어떠한 좋은 법이나 좋은 제도,좋은 관습은 사회가 성장하는 시기에 만들어 진다.

반면,

보름달의 시대가 되면 제도가 타락하기 시작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관념,주의,사상은 보름달의 시기에서 그믐달의 시기로 갈때 전성기,과잉기가 온다.


누가봐도 사회가 변한다 싶을때,
 
과거를 그리워 하며 
사람은 과거에 더 집착하는 법


이 백년전쟁의 시대가 딱 그 시기였다.




기사도.JPG \


기사들의 시대가 끝나고,
기사들이 농민들에게 몽둥이로 맞는 시기가 다가오자,

기사도의 과잉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니, 평소 기사들끼리 폼 잡는 일은 상상을 초월했다.


건틀렛.JPG \

기사들 끼리 결투할때는 
건틀렛을 풀어 상대에게 던지며 결투 신청을 했다.

그걸 맞은 상대방은 바로 칼을 뽑지 않고
그걸 주워서 상대방에게 돌려주며 
알겠다며, 다시 끼라고 한후 
착용이 끝나면 결투를 시작했다.


기못희.JPG \

(서양문화에서 장갑을 벗어서 던지는 것이 선전포고의 뜻이 된 유래이다.)


그걸 보는 일반 백성들은 모두 속으로 욕했고, 기사를 비꼬는 문화가 이때부터 생겨났다.



왕끼리 1:1 결투를 신청해 서로 승락해놓고 실제 결투는 하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고,

무고한 백성을 죽이지 말자며 대표기사 30명씩 뽑아
싸움이 실제로 일어난 적도 있었다.

(다만 승리의 룰이없어, 붙은 다음 서로 이겼다고 우기다가 끝난다..)


저장.JPG \

이러한 기사들끼리의 결투에는 플레이트갑옷에 실제로 유효한 데미지를 입힐수있는 
철퇴사용은 금지하는 것이 룰이었고, 칼만 쓰게 되있었다.



일화를 하나 소개를 하자면,

성전.JPG \

프랑스의 루이 공이라는 고위 귀족영국의 흑태자 소유의 성을 공격한 일이 있었다.

흑태자의 부하가 그 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3땅.JPG \

루이 공이 성을 공격하다 함락이 안되자, 땅굴파기를 시도 했다.

성의 수비대장은 대항 땅굴을 같은 지점에 파내려가기 시작하고
땅밑에서 서로 땅굴끼리 뚫린다.


결국 이렇게 된 거 땅굴에서 1:1 대결이 성사되는데,

루이 공이 수비대장에게 우리쪽에서 기사가 갈테니 1:1 대결하자! 라고 하니,


영국군 수비대장이 루이 공에게 먼저 양해를 구한다.

"우리는 당신하고 결투 할만한 기사가 없습니다. 다만 대장인 나는 하급귀족이라
원래는 안되지만, 상황이 이러니 내가 상대해도 되겠소?"


그렇게 땅굴 밑에서 1:1 대결이 벌어지는데,

프랑스의 루이 공은 기사도를 위해 대장이 먼저 들어가야 된다며 
부하의 만류에도 본인이 직접 땅굴밑으로 가서 1:1대결을 하러 들어간다.


그렇게 싸우던 프랑스의 루이 공과 영국군 수비대장,


영국군 수비대장은 싸우다가 당황하여 당신 누구냐고 묻는다.

그랬더니 프랑스 기사가 바이저를 열고 "나 루이 다" 라고 대답한다.


대장이 들어올 줄은 몰랐던 영국군 수비대장.


" 나같은 하급귀족을 상대해 주다니 정말 너무 고맙소 "

"나를 기사로 서임해주면 이 성을 바치겠소 "



싸우던 도중 항복의사를 받은 프랑스의 루이는

그 자리에서 거절한다.





이유를 예측해 볼 수 있겠는가?


조정.JPG \


프랑스의 루이는 '이런 즐거움을 나 혼자 누릴 수 없다'며

'너의 부하와 나의 부하가 전부 한번씩 붙은 다음 내일 저녁에 항복해라.'

라고 말한다.


그러자 실제로 밤새 한명씩 1:1 결투를 하고 다음날 항복을 받은 뒤
수비대장에게 기사 작위를 주고 헤어졌는데,


이 사람을 영국에서도 '명예롭게 싸웠다'며 


반역자 취급을 하지 않았다.


지린다.JPG \
(으..응 기잇!)


....... 이 기사도 정신의 후유증은 거의 2차 대전까지 간다.

영국군 고위장성들은 특수부대 창설 초기 기사도 정신에 위배된다며 
특수부대 창설에 반대 할 정도였다.



2차 세계 대전때, 전선이 불확실하니 이동중에 잡히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독일군 장교가 영국군 장교에게 잡히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자 독일 장교가 수첩에서 자기 여동생 사진을 보여주며 풀어주면
나중에 여동생을 소개시켜주겠다고 하고 풀려난다. 


장교는 곧 중세로 치면 기사


그래서 사진을 본 영국 장교는 그 장교들 끼리의 약속을 믿고 독일군 장교를 풀어준다.

전쟁이 끝나고 2년뒤 그 마을에 찾아간 영국 장교, 


그때의 독일군 장교를 만나게 되고

독일군 장교또한 약속을 지켜 


독일군 장교의 여동생과 영국장교는 결혼했다.




이 들의 허세는 이 정도였다.



헨리.JPG \

그 동안 헨리 5세영국왕 자리에 오르게 되고,



1415년, 헨리 5세는 휴전을 깨고 다시 한번 프랑스를 도발하게 되는데....


여기서 백년전쟁 역사상 가장 큰 전투가 벌어진다.




- 7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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