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미스터리 > 미스터리
미스터리

영화보다 더 굉장한 실제 존재했던 저격수들

쿠궁 10 3229 10 0

1. 미군 현대전 스나이퍼의 거의 모든 것을 재확립한 전설의 스나이퍼 카를로스 헤스콕

1.jpg

- 3박4일에 걸쳐 1.5km를 포복전진만으로만 월맹군 기지에 침투해 월맹군 장군을 사살했고, 아군 소대를 포위한 월맹 정규군 1개 중대를 관측수와 둘이서 우선 모든 장교와 통신병을 사살하고나서 5일간에 걸쳐 서서히 녹여 버렸다.

- 한 전투에서 적 저격수 12명을 카운터 스나이핑(역저격. 적 저격수를 사살)으로 침묵시킨적도 있다. 이때 적 저격수의 조준경에 정확히 구멍을 내는 헤드샷을 쏘았는데, 실전에서는 현재까지 기록으로 남은 유일한 성공사례이다. 'Mythbusters' 에서도 한번은 불가능이라고 했다가 여러번의 실패끝에야 성공했을 정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톰 베린저의 스나이퍼 등 저격수가 나오는 각종 영화 등에서 나오는 같은 상황도 헤스콕의 이런 전과를 따온 것이다.

- 헤스콕이 M2 중기관총으로 세웠던 세계 최장거리 저격기록(약 2,300m)은 35년이나 흘러서야 겨우 깨졌다. 그밖에도, 물위를 달리는 고속보트 위에서 대략 700m거리밖의 베트콩을 저격하는 곡예에 가까운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헤스콕의 전설적인 저격 실력을 놓고 킬 수 많은 2차대전 때의 저격수들과 비교하곤 하지만, 사실 저격사에서 헤스콕의 위치는 단순히 킬 수 많은 정도가 아니라 미군의 저격술 학교 시스템을 정립하다시피 한 '저격 교관'으로서의 위치가 높게 손꼽힌다. 미 해병대 저격학교의 모토인 "One shot, One kill."을 만든 것도 헤스콕이며, 네이비 씰 팀 식스와 많은 군경에 저격 강습을 한 것도 그다.

2. 최장거리 저격기록을 갖고 있는 영국 근위 기병대 크레이그 해리슨

2.jpg

2009년 11월 영국 근위 기병대의 크레이그 해리슨은 2명의 탈레반 저격에 성공함으로써 기네스 기록을 수립했다. 저격 거리는 2.47km로 8.59mm총탄이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3초나 걸린다. 사용한 라이플은 L115A3이다. 라이플의 권장 거리보다 914m나 멀었다. 3번째 저격에서 병사의 기관총을 떨어뜨렸다.

추가 : 이 기록은 깨졌다고 한다. 현재의 최장 기록은 2012년 호주군 SAS의 병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달성한 2.81km이라고 한다.

3. 100일간 500여명을 사살한 시모 해위해 (시모 하이하)

3.jpg

1939년 영토 확장을 위해 26개 사단 병력으로 핀란드를 침공한 스탈린은 ‘하얀 사신(White Death)’을 만난다. 헤위헤는 16만 소련군과 대치한 콜라 강 전투에서 게릴라전을 펼쳤다. 그는 러시아제 모신나강 소총에 망원조준경을 달지 않았다. 오로지 맨 눈에 가늠쇠만으로 저격했다. 햇빛이 렌즈에 반사되면 매복 장소가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저격 중에는 입김을 내뿜지 않기 위해 차가운 눈으로 입안을 채웠다.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설원에서 헤위헤가 사살한 적은 542명, 지금까지도 최고 기록이다.

4. 총알 1발로 6명을 죽인 영국 저격수 마크스맨

4.jpg

2013 년 12 월, 영국의 저격수가 단 한 발의 총알로 6 명의 탈레반 병사를 처치했다. 이것은 자폭 테러범의 기폭 스위치를 저격하여 폭발시킨 기술이었다. 그는 20살의 저격병으로 850m 거리에서 20kg의 폭발물을 폭발시켜 탈레반의 공격을 막은 것이다.


5. 소련이 낳은 역사상 최강의 여자 저격수 파블리첸코

5.jpg

1941 년 6 월 독일의 소련 침공이 시작되었을 때 24 세의파블리첸코는 키예프 대학에서 역사를 배우는 학생이었다. 간호사가 되는것을 거부하고 당시는 아직 드물었던 여군의 길을 선택했다. 적군은 2,000 명의 여성 저격수가 있었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500 명 뿐이다. 그녀도 그 중 한 명으로,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적의 저격수 36 명을 포함한 309 사살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종전 후 외교 홍보의 일환으로 캐나다와 미국에 부임 미국 대통령에 초대 된 최초의 소련인이되었다.

6. 벽 넘어로 3명의 적군을 사살한 미 해병대 스티브 라이헤르트

6.jpg

2004 년 4 월 9일 이라크 군의 기습을 받았을 때 미 해병대의 스티브 라이헤르트 이등 중사는 아군을 엄호하기 위해 폐기 된 원유 저장 탱크에 올라 앉았다. 당시 인근 건물 뒤에 대구경 기관총으로 무장 한 3명의 이라크 병사가 매복하고 있었다.

때문에 라이헤르트는 추측에 의지해 벽돌 벽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로했다. 그 결과 이라크 병사 3 명은 모두 무너져 내렸다. 1명은 철갑탄에 의해 벽 너머로 관통되었고, 나머지 2명은 비산 한 벽의 파편에 명중 되었다. 그는 이라크 종군 동안 1,614m 저격을 성공시켰다고 한다.

7. 255명을 사살한 미군 역사상 최고의 스나이퍼 크리스 카일

7.jpg

미 해군 특수 부대 SEALs의 크리스 카일은 2003 ~ 2009 년 이라크 종군 동안 공식 160 사살을 포함한 255 사살을 이뤘다. 이것은 미군 사상 최다 기록이다.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진 2차 팔루자 전투만 해도 40명의 병사를 사살했다. 라마디 전투에서 그의 소문이 이라크 병사 사이에도 퍼져 “라마디의 악마’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그 목에 2000만원 이상의 현상금까지 가했다. 2008 년 사다르 시티 교외에서 1,920m 거리의 338매그넘 로켓 발사기 병에 명중시킨 저격은 지금도 회자 되고 있다.

카일은 2013 년 PTSD를 앓는 25 세의 전직 해병대 병사 에디 레이 루스의 사격지도 중 갑자기 그가 발사한 총에 의해 사살되었다. 제대 후 쓴 자서전 “네이비 실즈 최강의 저격수’는 베스트 셀러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의 원작이되기도한다.

8. 860m 거리에서 총알을 17m나 휘게하여 저격에 성공한 영국 해병대 맷 휴즈

8.jpg

이라크 전쟁 초기 영국 해병대가 자랑하는 사격의 명수 맷 휴즈 하사는 이라크 병사의 전진을 막도록 명령을 받았다. 당시 강풍이 불고 있으며이를 성공 시키려면 바람의 흐름을 완벽하게 읽어야 했다. 이 악조건 속 그의 스나이퍼 라이플 L96에서 발사 된 7.62mm 탄은 공중에서 17m 휘게 한 끝에 이라크 병사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는 풍속과 풍향의 탄도를 계산하고 860m의 목표물을 저격하기 위해 위치를 계산했던 것이다.

9. 900m의 저격에 도전한 미군 고참병 테드 군디

9.jpg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테드 군디는 미군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벌지 전투에 몸 담고 있었다. 2011 년 85 세가 된 그에게 그 실력을 선보일 기회가 찾아왔다. 현역 중에 애용하고 있던 스프링 필드 1903 소총의 복제본을 짊어진 군디는 66 년의 공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약 270m의 목표물을 손쉽게 관통시켰다. 그 후 최신 레밍턴 M700을 처리하는 방법을 강의하고 900m의 목표물 저격에 도전했다. 이 때의 경험을 “인생에서 최고의 경험중 하나입니다”라고 말했다.

10. 소련의 저격영웅 바실리 자이체프

10.jpg

바실리 자이체프는 62군의 284 소총병 사단의 1047 소총병 연대에서 근무했는데, 저격수로 활동하면서 공식기록 242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사살기록을 내세우게 된다. 그가 시모하이하와 달리 유명해진 까닭은, 닥치는 대로 저격한 것이 아니라 군 지휘관 즉, 군 장교들만은 목표로 삼아 저격을 했기 때문. 공식적으로는 225명의 독일군 (대부분이 장교이며, 11명의 저격수 포함)을 저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록이 정확하지 않아 더 많은 적을 사살을 했을 수도 있는 사람, 즉 저격계의 왕

스탈린그라드 전투 내내 저격수로 싸웠으며 1943년 1월에 박격포 포탄에 피격되어 부상을 입은 뒤에 잠시 눈이 멀었다가 다시 전선으로 복귀했다. 그는 전쟁영웅으로 크게 선전되었고, 스탈린그라드에서 분투하는 소련군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시력을 살리기 위해 소련에서 가장 유명한 안과의사였던 필라토프 교수가 파견되었다고. 눈 부상 후유증으로 시력이 나빠져 저격 일선에는 나가지 못하고 이후 저격수 교관 업무를 주로 맡았다. 그러나 종전시까지 계속 군에 남아 있었으며,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주역인 제62군이 이름을 바꾼 제8친위군 소속으로 1945년 베를린 전투에도 참가하여 베를린 근방의 젤로 고지 전투에 참전하고 종전을 맞았다. 후에 업적을 인정받아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받았다. 해군에서 상사까지 진급한 뒤 육군 준사관이 되었다가 보병대위까지 진급했으며, 1943년엔 공산당 당원이 되었다. 그가 전쟁 중 기록한 공식 킬 카운트는 242킬인데 이 전적을 올리기 위해 사용한 탄환의 수는 불과 243발이었다고 한다. 딱 한 발이 빗나갔으니 명중률은 99.588...% 그야말로 원샷 원킬 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전설적인 저격수이다.

10 Comments
양파껍데기 2017.10.27 13:21  
3번째 사람은 얼굴이 왜 저럼>?
ㅇㅇ 2017.10.27 13:56  
[@양파껍데기] 유탄맞음
엄석대 2017.11.08 23:25  
[@양파껍데기] 입김때문에 눈을 입에 넣어서 입돌아간거같음
내가나다z 2017.10.27 13:58  
와 영화 이야기네
mbongcokr 2017.10.27 14:03  
마지막 인물은 바실리 자이체프의 이야기는 영화 에너미 엣 더 게이트로 제작됨 재미있으니 한번쯤 보는것도 나쁘지 않음
ㅇㅇㅇㅇ 2017.10.27 14:23  
영화 에너미 엣더 게이트랑 아메리칸 스나이퍼 볼만 함.
Firebat 2017.10.27 15:08  
바실리 ㄷㄷ 1발 빗나간게 오지네 ㄷㄷ
힐노예 2017.10.27 21:22  
바실리 자이체프 명중률 ㄷㄷ하네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
메롱 2017.10.28 20:24  
에너미 엣더 게이트는 군대 갔다와서 봤었는데 명작이다 라는 생각이 듬
Steam 2017.10.28 22:38  
누구에겐 영웅...누구에겐 공포의 대상...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