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는 물질 문명이 멈춘 시기 (지구 반대편과 비교)
주성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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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4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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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 존나 고이다못해 썩은물인데
첫째, 도로와 학교, 병원, 군수공장 등의 설치와 행정조직의 정비가 식민지 국민에게 실제로 어떤 기여를 했는가
교육혜택은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식민지인을 동등하게 보는 것이 아닌, 하등인으로 취급하는 교육을 실시했죠. 또한 전통적 교육시스템을 파괴함으로써 식민지국가들의 교육은 퇴보합니다
그나마 설치된 도로와 철도는 대도시에만 혜택이 집중되었고, 전국적 착취를 위한 수단이었죠. 역둔토를 설정하고, 철도길을 기준으로 폭 20-30km는 치외법권으로 설정하여 범죄소굴이기도 했습니더. 게다가 누구도 나치스가 방대한 고속도로를 건설했다는 이유로 그들이 독일을 근대화시켰다고 주장하는 미친놈은 없습니다
식민지 지배 하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 국민에 대해 인권이라는 개념은 없었으며, 이는 대량 인명학살로 나타났습니다. 독일의 헤레로인 대학살, 미국의 필리핀 학살, 프랑스의 알제리 학살, 일본의 남경대학살과 관동대학살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근대화란 단순히 철도깔고 하는 물질적인게 근대화가 아닙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전세계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국가를 근대화시키지 않았다는건 해석이나 관점의 차이도 아니고 팩트입니다
정작 실질적 제국주의 국가였던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이 식민지 근대화론은 허구임을 밝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피해자인 국가에서 이런 생각을 가지거 있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1. 르네상스 이후 지중해무역이 부활하면서 유럽 ↔ 중앙아시아, 중동 ↔ 중국의 무역루트가 개척됩니다. 신항로 개척당시 포르투칼이 마카오에 무역항구 설치하죠. 당시 무역량을 비교해보면 저 세 곳이 1:1.5:1.5의 비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16~17세기 동안 지속됩니다.
2. 중국의 쇄국정치라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으나, 명은 감함무역을 청은 광동체제 하 공행무역을 실시햇습니다. 쇄국이라 함은 흥선대원군처럼 아예 무역을 하지 않는 것이죠.. 이미 무역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공식적 용어는 제한무역이지, 쇄국정책은 아니라 생각되는데요.. 이 제한무역을 타파하기 위해 아편전쟁을 벌인것이죠. 쇄국정책이라 아편전쟁이 일어난게 아닙니다.
3. 18c 초반 프랑스의 경우 인구 비율은 제1,2신분이 2% 제3신분이 98%였으며, 제3신분 중 상층 부르주아를 빼면 인구의 대다수는 농촌인구였습니다. 유럽 각국의 농촌인구가 도시인구를 추월하는 것은 영국이 1851년, 독일이 1891년, 프랑스는 자그마치 1931년입니다. 그나마도 국가의 제1산업으로서 농업이 공업에 역전되는 것은 영국과 벨기에의 경우 18c후반, 독일의 경우 19c중엽, 프랑스의 경우 제3공화정 전반기인 1880년대에요...
4. 저 분이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만, 뭐하시는 분이길래 캘리포니아 학파를 무시하는지 이해할 수 없네요. 일단 저 분이 놓치고 있는걸 말씀드리죠. (일단 저분이 제시한 자료가 맞다는 전제하에..)_ 저 분이 제시한 가장 마지막 자료가 총 정리 그래프네요. 그래프에서 16~18c 유럽 각국의 연간 재정 수입을 제시하고 있고, 청의 연간 재정 수입을 비교하고 있군요
1750년을 기준으로 합쳐보면 유럽 내 프랑스가 1000톤, 영국 600톤, 스페인 300톤 정도 되네요. 저 분이 제시한 자료에 따라 1750년 동시기인 건륭제 시기에 4500만냥이면 (은1냥에 37.5g) 중국이 1687.5톤이네요
(저 분이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마지막 그래프를 보면 동시기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낮다는 평가가 어떻게 가능하죠? 제가 그래프 잘못해석하나요? 틀렸으면 수정바랍니다)
(1) 일단 저 분은 국가 자체의 재정규모와, 식민지 약탈로 인한 수입으로 인한 재정규모를 구분하고 있지 않습니다. 영국은 이미 북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삼고 있었고, 이미 다른 많은 나라로부터 재정 수입을 더해야 600톤인거죠. 스페인은 남아메리카 원주민을 대량 학살해가며 광산에서 얻은 거니 더 할 말 없구요. 따라서 각 국의 순수한 재정수입이 중국에 택도 없죠.
(2) 중국의 현지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네요.
- 1710(1711?)년 강희제는 성세자생인정을 발표합니다. 뭐냐면, 현재 인구를 기준으로 고정하여, 세금을 더 이상 걷지 않겠다고 하는거죠. 무슨말이냐면, 1711년 이후 태어나느 사람들에게는 지세와 정세를 걷지 않겠다는 거죠. 이후 청대 인구증가율이 어떤가 보시길 바랍니다.
- 이를 기반으로 1710년의 청과, 1700년대의 유럽을 비교하는게 정확하죠. 비교해볼까요? 프랑스는 900톤이네요, 영국은 300톤, 스페인은 250톤 정도 나머지 유럽 다 합쳐도 500톤도 안되네요. 저 분의 견해에 따라 1710년 당시 강희제 당시 1312.5톤 정도니 비교가 되리라 봅니다.
*** 중국인 아니구요.. 중국이 18c 중엽까지 전세계 강국이었다는 말입니다. 캘리포니아 학파가 일개 블로거한테 무시당할만큼 호구가 아니거든요.
중국은 사상의 획일화로 과학기술과 문화와 예술은 이미 16세기부터 유럽에 비해서 뒤져있었죠. 하지만 국가 경제력이 1800년까지는 중국이 전체 유럽대륙과 비슷했다는게 대체로 일반적인 견해죠. 저 분은 무슨 세금대비 gdp를 구분하고, 관료제의 부패, 토지세냐 상업세냐 이런걸 비교하는데 그걸 도대체 왜 비교하는지 묻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