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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 ep 7. 원소에 대한 충심은 1등, 그러나 그게 전부였던 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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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번에 소개해드리고자 하는 인물은 삼국지에 등장하지만 삼국정립 이전에 활동하는, 




 

원소 진영의 참모 심배, 자는 정남(正南) - (절대 묘이 미나 팬이라서가 아니라 크흠흠..) 



심배는 정사 첫 문장부터가 독특한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열혈타입에 정의감(하늘에서 정의가 빗발친..아 아니 오늘따라 dog드립이 충만해지는건 기분탓) 이 불 같아 의롭지 않은 것은 눈뜨고 보지 못하는 성격으로 보통 사람들은 감히 범접할 수도 없을 정도로 기백이 강했다' 라고 하니 딱 봐도 외골수 열혈청년 이미지가 풀풀 풍기죠. 


원소가 기주를 차지하기 전에는 전임 기주자사 한복(韓馥, 옷 아닙니다)밑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는데, 정직해서(아마도 너무 강직해서가 더 맞지않을까) 중용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원소가 기주를 차지하면서 따른 인재들은 대략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전임자 한복에게 쓰임받았지만 원소가 잘 대우해줘서 마음을 돌린 저수가 있고, 다른 한 부류가 심배와 전풍같이 전임자가 홀대해서 원소에게 마음바쳐 충성한 타입입니다.


원소에게 임관하고부터 치중(治中)으로 임명되는데, 이는 기주 전체 서류업무를 총괄하는, 한 마디로 도지사(원소)의 수석비서? 수석보좌관쯤 되는 실권있는 자리입니다. 원소가 기주자사를 자처하는 191년부터 199년까지 8년간의 행적의 자세한 서술이 따로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마도(거의 확실히) 행정가로서 묵묵히 일했다고 보여집니다.  좀 과장하면.. 

 



이렇게 서류만 죽어라 팠지 않았을까 싶기도?


뭘 했는지 공백인 8년이 중요하다기보다 그의 출신과 배경과 행동이 이질적이었다는 점이 오늘 그를 살펴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하북의 1인자이자 패권에 가장 근접한 인물로 평가받았던 원소에게는 크게 2개의 파벌이 존재했습니다. 원소를 비교적 일찍부터 섬긴 하남계(여기서 하남은 황하의 남쪽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황하 이북은 하북이고 장강 이남은 강남이죠)에 속하는 봉기, 곽도, 순심, 허유, 신평과 기주 호족계에 속하는 전풍, 저수, 심배입니다. 


근데 소속상 기주의 이권을 대변할 것같은 심배는 비단 하남계뿐만 아니라 같은 기주계와도 그닥 사이가 좋지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그렇게 만들어 진 것이라고 봐야될까요? 우선 기주계인 저수가 천자를 모시자고 간언하는데, 이 안건부터가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던 것이 원소 진영 전체의 미래를 결정짓는데 일조합니다.


1. 천자인 헌제는 동탁이 옹립한 황족입니다.


2. 그런데 원소, 정확히는 원씨는 사세삼공(4세대동안 삼공이라는 최고위직을 배출하였다는 의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정치명문가 집안입니다. 


3. 당연히 정통성이 부족한 작금의 황제(헌제)에 대해서는 고까운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 더군다나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하고서 원소가 세력을 키운다는 소식을 듣고 낙양에 남아있던 원가의 장로들과 원소의 친어머니와 누이를 포함한 원씨 일족 남녀노소 50여 명을 감옥에 가둔 후 처형시킵니다. 


이러니 그런 원수 동탁이 세운 괴뢰정권 헌제가 아무리 명분과 실리를 위해서라지만 모실 생각이 날 턱이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원소 휘하에 장도(張導)가 장안에 가서 천자를 알현하고 작위를 받아서 돌아오니까 원소가 대노해서 본인은 물론 일족을 참살해버렸을 정도니 군주의 입장에서 머리로는 이해했을지 몰라도 천자를 모시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더군다나 하남계인 곽도와 순우경(원소와 같은 서원팔교위 출신이므로 나이나 경력이나 원소 진영에서 무게있는 원로급인사였음) 등이 반대하자 저수의 의견은 가납되지 못하죠.​ (물론 중국에서 가장 좋은 4개 주-기주, 청주, 병주, 유주-를 차지하니 욕심이 좀 나기 시작한 것도 있었을테고요)


이렇듯 원소 진영의 역사는 하남계와 기주계의 의견 충돌로 인한 사건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정도로 양측은 의견합치를 보는일이 드물었습니다.  

 


199년, 관도대전에서 심배가 재등장하는데 하남계인 곽도는 조조와의 단기전을, 전풍과 저수는 장기전을 제안합니다. 생각대로라면 기주계에 속하는 심배는 역시 장기전을 제안할 것 같죠?  

 



심배의 선택은 단기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원소는 곽도/심배의 전략을 채택하죠. 연의에서는 심배가 토산과 땅굴을 이용해 조조군을 압박했다고 서술되지만, 사실 원소가 출전할 때 참모로 곽도, 허유, 순심을 대동하며 사실 심배는 업성에 남기 때문에 땅굴과 토산은 허구입니다.


그러나 허유가 횡령비리를 저지르던 것을 심배가 알아채고 가족을 체포했기 때문에 빡쳐서 관도대전 막판에 허유가 배신하고 조조에게 붙어서 기밀이 유출되고 원소군이 대패를 당합니다. 여기서 원소가 얼마간 행방불명되기까지 하는데, 후퇴하느라 대신 지휘하는데 바빠서 제 시간에 황하를 못건넌 저수는 조조에게 잡혀죽고, 제대로 복귀한 원소는 기존의 장기전 전략을 (지가 안따라 놓고) 입안했던 전풍을 괘씸죄로 죽여버립니다. 


이렇게 어이없게도 기주계 파벌의 핵심인물인 전풍과 저수가 없어지자, 하남계의 독주가 시작되는가 싶었지만.. 



정치라는 게 어쩔 수 없는게 또 파벌이 양분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심배가 어지간히 독불장군 기질이 있었는지 사이가 나빴던 맹대라는 인물이 심배를 견제하는 언플을 합니다. "심배는 정치를 독점하는 자리에 있고 그의 종족은 크고 병사가 강하면서 두 아들이 남쪽에 있으니 반드시 배반할 마음을 품을 것입니다." 라고 적에게 두 아들들이 포로로 잡힌 양반한테 너 배신할지도 모르는데 라고 운을 띄우니까 단기전 입안을 함께 했던 곽도가 동조합니다.

 




믿을 새끼 하나 없다더니 관도대전 이후로 입지가 좁아진 놈이 자기를 밟고 원소에게 신임 받으려고 무고를 하니 얼마나 열받을까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하남계인 봉기가 심배를 변호해줍니다.  

 



이후로 심배와 봉기 두사람은 쿵짝을 맞추게 되고 원소는 감군에 심배를 임명하면서 그의 입지는 다시 올라가게 됩니다. 그런데 기껏 관도대전의 패배를 수습하고 내부반란을 정리하는가 싶었는데 202년 5월 원소가 돌연 급사해버립니다. 

 



후계구도가 참으로 볼만했던 것이, 원소는 죽기전에 첫째인 원담을 후계자에서 내리며 심지어 형의 양자로 입적시키면서 친아들을 졸지에 조카로 만들어버리는 강수를 두지만 청주자사에 임명해 세력기반은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셋째인 원상을 밀었는데, 후계자로 확정하지는 않았던 상태였습니다. 원상이 어렸기 때문에 곽도와 신평은 장자승계의 원칙을 주장하였고, 반대로 봉기와 심배는 원상을 지지했습니다. 심배는 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4가지 없는 곽도 때문에 모함받고 죽을 뻔했던 데다가 원담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니 넌 도대체 사이 좋은 사람이 없는거냐)



원담이 계승하러 올 것을 우려한 나머지 심배와 봉기는 원소의 유언을 조작해서 원상을 후계자로 옹립하는 강수를 둡니다. 나중에 업(기주의 주도)에 도착한 원담은 여양에 주둔하며 거기장군을 자칭하는데, 이 직위는 반동탁 연합 당시 원소가 스스로 임명한 자리로 한 마디로 원상이 아니라 내가 진짜 후계자라는 공식선언이었죠. (애비나 아들이나..아니 삼촌(원술)도 황제를 참칭했으니 이거는 뭐 정치가 집안 아니랄까 김칫국 독째 드링킹 수준..)


원상은 욕심많은 형님을 달래고자 봉기를 중재로 보냈는데, 아니나 다를까 원소의 죽음을 포착한 조조가 원담을 치려고 하자 원담이 도와달라고 하죠. 여기에는 두 가지 서술이 있습니다.


1. 심배는 원상에게 거듭 간언하여 지원군 파견을 막고, 제대로 빡친 원담은 화풀이로 봉기를 참수합니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자 원상이 직접 지원군을 이끌고 형을 구하러 가고 심배는 업성에 남습니다.


2. <한진춘추>에 따르면, 심배가 지원군 요청을 거부하기 이전에 봉기가 오히려 원담을 부추겨서 원상과의 관계를 악화시킵니다. 원담이 봉기를 죽이고는 비굴하게도 원상의 승계를 인정하며 화해하였는데, 추가로 심배가 '흉신 봉기가 망령되게도 (원소의 뜻에) 쓸데없는 사족을 긋고 그릇된 말로 첨언만 하여 친족의 도리는 이간되었다.' 묘사하며 일족도 모두 숙청시켰다고도 하죠. (아니 구명해준 것도 잊고 봉기 가문을 족치다니?) 


이후 심배에게 업성을 맡기고 원상이 주도권을 가지고 원담과 함께 조조와 싸우지만 패해 성으로 퇴각하고, 조조군에 포위에 눌려 밤에 도주합니다. 조조는 유유히 업성까지 가서 보리를 거둬들이는 여유까지 보여주고 허도로 돌아갑니다.  


권모술수의 달인인 우리의 조조는 원담과 원상의 실날같은 결속력을 감지하고 형주로 남정을 가는 척을 합니다. 주도권을 빼앗긴 원담에게 곽도와 신평이 슬그머니 접근해서 "선공에게서 장군이 폐출된 것은 모두 심배가 계책을 꾸며 이간질했기 때문"이라고 흘리자 원담은 결심하고 원상을 급습하지만 털리고, 2차 공격도 해보지만 심배에게 또 털립니다.


승산이 없다고 본 원담은 조조에게 항복하고, 조조가 북침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원담의 최대의 실수가 되버립니다. WHY? 


심배는 원담이 원수와 손을 잡은 것을 질타하며 모든 문제의 원흉인 곽도를 베고 화해하자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원담은 이를 읽고 눈물을 흘렸으나 이미 곽도에게 실권이 넘어가 겁박당하고 있던 처지였으므로 이를 따를 수 없었다고 한다. 곽도에겐 오직 출세뿐이었던 것.. 


이 때 원상은 청주까지 가서 원담을 족치고 있다가 업성으로 돌아와서는 심배와 소유(蘇由)에게 군권을 맡기고 다시 평원군으로 가서 이복 형을 계속해서 족칩니다. (잔인한 시키..)


204년, 원상이 이렇게 다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조조가 또다시 업성 50리 앞까지 진격해옵니다. 그런데 소유가 조조군과 내통하려던 움직임이 심배에게 발각되고 성 내에서 시가전까지 벌이지만 결국 패해서 조조에게 도망갑니다. 이후 심배는 존버의 정수를 제대로 보여주는 필사적인 투혼을 보여줍니다. 

 


1. 업을 공략하기 위해 조조가 땅굴을 파자 심배가 이를 감지하고 참호를 팝니다.


2. 토산을 만들어 공성하지만 실패합니다.


3. 풍례가 군문을 열고 돌격하는데, 그 안의 조조군이 300여 명 있었고 심배가 성 위에서 큰 돌을 떨어뜨려 책문이 닫히고 들어갔던 자들은 모두 죽었다고 합니다.( 이건 뭔소린지 모르겠군요)


4. 조조가 성 주위에 40리에 걸쳐 구덩이를 파게 했는데 깊이가 얕아 심배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대놓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2장(4.6)의 너비로 구덩이를 넓히고 장수(혹은 장하, 업성을 가로지르는 하천)를 무너뜨리자 성 안의 아사자가 절반을 넘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심배는 항전을 계속합니다.  


그러나... 


204년 7월, 원상군이 서산에 의지하여 오면서 동으로 양평정에 이르렀을 때 업성과의 거리가 70리가 되자 횃불을 들어 성 안에 보여주니 성 안에서도 횃불을 들어 서로 호응하였는데, 심배와 원상이 조조군을 포위하나 조조군의 공격에 오히려 패하고 원상이 조조군에게 포위됩니다. 겁이 난 원상이 음기와 진림을 보내서 항복하려하지만 거절당하고, 남구로 도주합니다. 그러나 조조는 끝까지 따라와 다시 포위하자 장군 마연이 항복하고 병력만 또 잃은 채 중산국으로 도망가는 지경에 일죠.


심지어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원상의 사촌인 병주자사 고간이 반란을 일으키고 원상이 흘리고 간 소지품을 업성에 보여주자 방어군의 사기는 바닥을 칩니다. 


그런데 때마침 조조가 성 가까이 시찰을 오는 희대의 기회가 오고, 심배는 마지막까지 아껴둔 무기, 쇠뇌를 쏘아 조조를 부상입히기까지 하지만 조조는 살아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심영 

 


이 분 아니고 심배의 조카 심영(審榮)이 성문을 열고 조조군을 맞아들이고 심배는 동문으로 가서 맞서지만 결국 포로로 잡힙니다.  


조조가 심배에게 "내가 포위망 가까이를 시찰할 때, 어찌 그리도 쇠뇌가 많았소?" 라고 하자 심배는 "오히려 너무 적었던 것이 원망스럽다." 라고 당돌하게 이야기합니다. 


"경이 원씨 부자에게 충성한 것처럼 또 나에게도 그렇게 할 수 없겠는가."  라며 조조가 회유해보지만, "살아서는 원가(袁家)의 신하요, 죽어서도 원가의 귀신이 될 것이다." 라며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 모습에 탄식을 금치 못했다고 하죠. 


마침내 사형을 집행받을 때는 "나의 임금이 북쪽에 계신다." 라며 집행인을 질타해서 자신을 원상이 있는 북쪽으로 향하게 하고 죽었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 장면에서 어리석은 주인을 만나 죽었지만 충직하고 청렴한 의인이라고 칭송하는 시를 더해주기도 하지요. 


후세에는 심배를 원소의 막료가운데 끝까지 충성을 바친 유일한 인물이라고 충성심을 크게 인정해주었지만, 반대로 당대의 평가는 좋지 못했습니다. 원소 진영의 인물을 평할 때, 공융은 심배를 원소의 충신이라며 높게보지만, 순욱은 그를 고집불통에 융통성없는 인물이라고 일축해 버립니다.


이렇게 오늘은 원소진영의 중진이자 비장한 최후를 맞은 충신 심배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5 Comments
Kuat 2018.03.13 01:59  
첨언하자면 일전에 원담이 패해서 달아났을 때 그의 막하였던 곽도와 신비의 일족은 피신했으나 신비의 형 신평의 가족은 인질이 되었다고 합니다. 심영에 의해 동문이 열렸을 때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든 곽도와 신평에게 제대로 빡친 심배는 병사를 보내 신평의 가족을 죽여버립니다. 그토록 찾던 형의 가족이 모두 시체로 발견되자 분노한 신비는 말채찍으로 심배의 목을 후려치는 화풀이를 저지르지만 그 와중에도 심배는 "이 개같은 놈아! 너 때문에 조씨가 기주를 격파하게 되었으니, 너를 죽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라는 기개를 보여줍니다.

이 때문에 신비는 조조가 심배를 처형할 마음을 굳히도록 끊임없이 부추겼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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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일기 2018.03.13 05:27  
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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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at 2018.03.13 12:11  
[@생존일기] rr은 무엇인가요?
스미스 2018.03.13 13:55  
뭔가 원소 막료의 인물들은 자세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기본적인 평가로는 저평가 되어 있는 느낌들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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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at 2018.03.13 21:33  
[@스미스] 저도 자주 잊어먹곤 하는게..조조가 원소 휘하 중소 제후 중 한 명일 뿐이었으니까요. 조조가 연주를 가지고 있었고, 인물을 많이 보유하긴 했지만 190년대 중후반의 입지는 동쪽은 도겸이 서주와 예주 일부를 먹고 있고, 북예주는 원술이, 예주 서남부는 황건적과 다른 중소제후(이통,풍해,노초 같은), 형북에는 장수와 유표가, 장안에 이각, 곽사가 서량정예병 수만 명을 가지고 눌러앉고, 강동에 막 손책이 자리잡으려하는 참이고, 공손찬이 유주, 그리고 원소가 혼자서 기주,병주,청주 3개 먹고있던 시점이니까요.

원소 vs 조조 시점에서도 조조가 서주 연주 예주를 품에 넣었지만 서주는 조조가 토막에 토막내가지고 전력 0이고 인재들도 손권 측으로 많이 내려갑니다. 연주와 예주도 황건적~다른 제후들과의 싸움으로 인구감소와 농경지 유실이 심했습니다. 그러니 중원에서 가장 알짜이고 타격도 그나마 안받은 기능하는 3개 주+(황건적 타격이 있었지만) 청주를 가진 원소 vs 속으로 골병 단단히 든 3개 주를 먹은 조조의 관도대전부터가 애초에 원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전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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