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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 ep 6. 조조네 최고 무장이자 동시에 연의의 최대피해자 조인(曹仁) Pt 3

Kuat 2 310 9 0

희한하게도 이 시점부터는 대행(-정식 수여가 아니라 임시 임명되는 것)으로 임무 수행하는 일의 연속입니다.

 

8. 유표가 죽은 후 형주 평정에 종군, 이후 서황과 강릉(남군)에 주둔합니다(정남장군(征南將軍으로 임명되는데, 정남장군은 의미 그대로 남쪽을 정벌하는 2품 외정사령관의 직위로, 중국 계급의 특징인 방향에 따른 계급차순이 이 정벌장군직에도 부여되어 있는데요. 각각 ,,,북순으로 위상이 차이가 납니다. 이 경우는 형주와 예주의 군정을 담당하죠. (RIP 유종)

 

208주유가 선봉으로 수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강릉 앞으로 오자, 조인은 적을 살펴보고는 300(THIS IS 스파르타!)을 뽑고 부곡장(部曲將고위장군이 직접 거느린 휘하 부장들과 군병들, 부곡장은 그들의 대장이겠죠우금(牛金, 여러분이 생각하는 우금 말고 다른 우금인데 이 사람도 나중에 후장군이라는 3품 상설장군직에 오르는 나름 능력자입니다)을 보내서 싸움을 겁니다.

 

당연히 쪽수가 부족하니 우금과 부곡은 포위되어 몰살되려하기에 조인이 딥빡쳐서(아니 그럼 왜 300명만 보낸거야) 말을 가져오게 해 출진하려고 하자장사(長史, 보좌관) 진교가 적의 군사가 흥성하니 당해낼 없습니다. 설령 수백 명을 버린다 한들 손해가 아닌데 어찌 장군께서 몸소 가려 하십니까!” 

 


마디로 주유군을 찔러보려 미끼로 보낸 병력이니 총책임자인 조인이 나갔다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그게 더 큰 손해라고 말한거죠.

 

그러나 우리의 맹장 조인은 휘하의 장사 수십 명만 거느리고 나가서 무쌍이 뭔지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적군과 100여 걸음 떨어진 해자(연못)에 접근해서 우금을 간접지원하는가 싶었지만 단숨에 해자를 뛰어넘어 적의 포위망 안으로 돌진해 우금을 구해냅니다.


 

 

이어서 되돌아가 빠져나오지 못한 잔존병력까지 추슬러 나옵니다

 

이렇게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자 진교가 뿅가서 장군은 실로 천인(天人)이십니다!” 라고 닭살돋는 멘트까지 합니다

 

이 성과(?)를 보고받은 조조가 조인의 봉직을 안평정후(安平亭侯)로 올려줍니다.

 

조인전에는 나오지않지만 이 시기 전쟁향방은 이통전, 서황전, 감녕전, 주유전, 오주(손권)전에 걸쳐서 나뉘어 서술되어 있는데, 이게 조인의 공식적인 첫 패배여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위의 작은 서전 이후 본격적으로 유비와 주유가 쌍으로 조인을 강릉에서 포위하고 무려 관우가 조인의 퇴각을 막기 위해 후방을 끊습니다. 그 뒤로 서황이 만총과 한진에서 관우와 한 판 붙고, 다시 서황은 강릉에 가서 조인과 주유를 칩니다. (바쁘신 우리 도끼 마스터)

 

그런데 여기에서 감녕이 불과 수백 명을 데리고 이릉을 점거해버립니다. 이 말은 조인이 장강 동쪽으로 거슬러 오는 유비&주유와 한진을 통해 후방을 괴롭히는 관우뿐만 아니라 서쪽 장강 상류에도 적이 생긴겁니다. 말 그대로 사방이 막혀버릴 판이라 조인이 5,6천 명(정확한 숫자는 안나오고 이렇게만 나옵니다)을 보내 누각을 세우고, 화살비를 내리고, 수비하는 동오군이 모두 두려워했다고 쓰여있습니다.

 

그 사이 주유가 감녕의 구원요청을 받고 여몽과 함께 감녕을 구하러 가서 성공함으로 이릉을 잠깐 내준 정도가 아니라 상실하게 됩니다. 이후 주유가 장강을 건너 육지에서 조인과 야전을 뜨는데, 화살에 오른쪽 겨드랑이를 맞고 대단히 큰 상처를 입습니다. 하지만 부상에도 불구하고 주유는 병사들을 독려하고 군영을 시찰하며 사기를 북돋고..

 

이런 상태로 1년을 대치하며 쌍방에 사상자를 많이 내자 오주전에 따르면 조인은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고 적혀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손권의 열전이니 오나라의 승리를 뻥튀기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조인 혼자서 유비, 주유, 관우, 감녕을 상대로 1년을 물고물리다가 후퇴했으니 오히려 이 4명이 조인을 물러나게 하는데 1년이나 걸린 것이라고 봐야되지 싶습니다. 그렇지만 조인전에는 이 기록이 없으니 조인이 물러난 정도가 아니라 힘겨워서 후퇴한 것에 무게가 실리지만 그래도 대단하지요.

 

 

9. 211년에는 마초,한수를 포함한 관중십장(關中十將, 서량의 군벌 연합)에 맞서 이번에는 () 안서장군(安西將軍) - 대리 안서장군-으로 동관에서 대기하다가 조조가 친정을 나오고, 위남(위수의 남쪽)에서 마초를 격파합니다. 동관은 장안과 낙양을 잇는 외길의 장안 쪽 출구로, 여기서 조인이 방어했기에 마초는 더 동진하지 못하고 조조가 병력을 모아서 역공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10. 비슷한 시기에 소백(蘇伯)과 전은(田銀)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번에는 () 효기장군(驍騎將軍), 중앙기병군을 통솔하는 2품 장군이나 이번에도 대리 장군으로서 7군을 지휘해서 진압하는 공적을 세웁니다.

 

** 정확한 시점은 나오지 않지만 유수구에서 조조와 손권이 몇 번 전쟁을 치루었고 217 3월에 하후돈, 조인, 장료를 거소에 남겨 손권을 대비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 정남장군(征南將軍에 임명되고 가절(假節, 전시에 군령을 어긴 자를 죽일 수 있는 권력)을 받아 번성에 주둔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1. 218 10 남양 사람 후음(侯音)과 위개(衛開)가 반란을 일으키고 관우와 힘을 합치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집니다


 

 

 

이에 조인이 방덕, 동리곤과 함께 219 1월에 재빨리 진압을 완료하고(후음과 위개는 참수), 마침내 대행 딱지를 떼고 조인은 정식으로 정남장군(征南將軍)이 됩니다


 

 

하지만 218년 여름관우가 번성과 양양을 포위하고 공격합니다. 8월에 장마로 한수가 범람해서 지원온 우금(바로 그 우금)이 사로잡히고 방덕이 처형당하며 성벽이 물을 먹어 허물어지고 성벽 높이도 수면에서 얼마 남지 않아 방어력이 저하됩니다. 설상가상으로 번성에 남은 병력은 고작 수천 명, 보급도 바닥을 치는 최악 중의 최악의 상태까지 갑니다

 

그러나 역시 조인은 조인, 남은 사람들을 격려해서 필사의 각오를 보이자 모두 한 몸으로 수성에 임합니다

 

10월이 되어 서황이 2차로 지원을 오고 물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조인과 서황은 연락에 성공하고, 마침내 관우를 퇴각하게 만듭니다. 이 때 손권의 뒤치기가 발동했기 때문이죠.

 

2 Comments
꺼진이 2018.03.12 19:50  
장료도 있나요?

럭키포인트 79 개이득

Kuat 2018.03.12 22:49  
[@꺼진이] 장료도 많이 요청받았습니다. 가장 먼저라고는 말씀 못드리지만 우선순위에 들어 있으니 보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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