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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촉한이 멸망하고 난 뒤에 일어났던 서진과 오나라의 교지공방전

주성치 4 1301 5 0


연의에서도 언급없는 부분이고


게임에서도 촉한의 멸망 이후라 나오지 않는 부분.




그나마 후반기장수 많이 나왔던 삼국지9에서는 이 교지공방전에 참가했던 인물들이 나오긴 함.






263년 촉한은 등산왕 등애에 의해서 멸망당함.



건녕에서 끝까지 저항하려했던 곽준의 아들인 곽익이 유선의 안전을 확인한 후 항복하면서 촉의 모든 영토는 위나라에 귀속되버려.





그리고 그 이후




01.jpg 삼국지 촉한이 멸망하고 난 뒤에 일어났던 서진과 오나라의 교지공방전.

일반적으로 게임에서는 교지를 끝으로 영토가 나오지않지만


실제로 오나라는 현재 베트남영역까지 잡고있었음.


교지 아래쪽에 구진, 일남까지 오나라의 영역권이었는데, 저쪽은 당시에 인구밀도가 매우 낮은 지역이고 한족이 거의 없었던 관계로



오나라의 관리들은 이민족의 남자들을 징발해서 병사로 사용하거나 용역에 이용하거나 했음.





저 교지에 태수로왔던 손서라는 놈이 성격이 너무 포악하고 저기서 수공업자를 징발해서 건업으로 보내버려.


결국 이민족들은 빡쳤고 오나라에 반기를 들 생각을 했고 여흥이라는 오나라의 관리는 이를 이용해서 교지에서 반란을 일으켜.




그리고 위나라를 끌어들였고 이 반란으로인해 교지, 일남, 구진은 위나라의 영역으로 들어가.



곽익.jpg 삼국지 촉한이 멸망하고 난 뒤에 일어났던 서진과 오나라의 교지공방전.


위 조정은 촉한의 장수였던 곽익을 남중제독으로 임명하고 촉한이 멸망하기까지 계속 했었던 남방의 지휘를 계속 이어가게 해.



여흥이 위나라를 끌어들였고 곽익은 여흥을 돕기위해 병력을 보냈지만 이미 여흥은 사망한 뒤였어.


하지만 여흥이 사망했다곤하나 교주에서의 반란으로 위나라에 귀속된 영토는 오나라로 돌아가지는 않았어.





한동안 교지에서는 전투가 없었고 265년 사마염은 위나라 마지막황제인 조환에게 선양받아 위를 멸하고 서진을 건국해.



1차 교지공방전



유준.jpg 삼국지 촉한이 멸망하고 난 뒤에 일어났던 서진과 오나라의 교지공방전. 수칙.jpg 삼국지 촉한이 멸망하고 난 뒤에 일어났던 서진과 오나라의 교지공방전.


그리고 3년뒤인 268년 오나라는 교주자사인 유준과 수칙을 보내 진나라의 영토인 교지를 공격하게 해.



양직.jpg 삼국지 촉한이 멸망하고 난 뒤에 일어났던 서진과 오나라의 교지공방전.

남중 제독이었던 곽익은 양직을 보내 오나라의 공격을 막게 해.



3갈래로 나뉘어져서 3차례에 걸쳐 진나라의 영토인 교지를 공격했지만 번번히 양직에게 패배해.



모경.jpg 삼국지 촉한이 멸망하고 난 뒤에 일어났던 서진과 오나라의 교지공방전.


그리고 곧 이어 곽익은 모경을 보내 합포지역을 공격하게했고 오나라의 유준과 수칙은 여기서 대패하고 이 전투에서 전사해버려.


오나라의 합포지역의 군사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오나라는 교지 이남지역을 빼앗긴것도 모자라 합포, 울림지역까지 진나라에게 빼앗겨버려.




02.jpg 삼국지 촉한이 멸망하고 난 뒤에 일어났던 서진과 오나라의 교지공방전.


합포를 공략하고 오나라의 장수를 죽인 공으로 모경은 울림태수로 임명됐어. 



1차 교지공방전을 통해 진나라는 남방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실히 했고


오나라는 아무 이득도 못보고 남방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실하게 상실시킨 결과만 낳았어.

 






그리고 271년 오나라는 잃어버린 남방지역의 영향력을 다시 수복하기 위해 합포와 교지로 군사를 일으켜.



2차 교지 공방전




도황.jpg 삼국지 촉한이 멸망하고 난 뒤에 일어났던 서진과 오나라의 교지공방전. 설후.jpg 삼국지 촉한이 멸망하고 난 뒤에 일어났던 서진과 오나라의 교지공방전. 우사.jpg 삼국지 촉한이 멸망하고 난 뒤에 일어났던 서진과 오나라의 교지공방전.



잃어버린 영향력을 다시 찾기위해 오나라는 도황, 설후, 우사를 보내 대군을 일으켜 일시에 합포, 교지를 공격해.



도황은 합포 근처에서 바닷길로 우회해서 구진상륙작전을 펼쳐 순식간에 구진을 포위해버리고


내부 교란을 통해 구진을 점거해.



03.jpg 삼국지 촉한이 멸망하고 난 뒤에 일어났던 서진과 오나라의 교지공방전.
정사에 보면 


도황 (璜)은 바닷길(海道)을 좇아(從) 생각지 못한(不意) 곳으로서(於) 나아가(出) 

라는 구절이 있는걸보면 바닷가를 이용해서 구진으로 쳐들어갔다고 생각해도 될법한데 대규모 군대가 바닷가를 통해 움직이는걸


진나라에서 못봤을거라 생각하지는 않기때문에(구진으로 가려면 교지를 거쳐야하니)


바다를 통해 상륙한것처럼 그림으로 표시했고, 아마 이렇게 가지 않았을까 싶어.






이후 설후와 합류하여 10만의군사로 교지를 포위했고


당시 교지에 있었던 곽익은 위나라의 법을 이야기하며


100일동안 저항하다가 항복하면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피해를 입지 않고 100일전에 항복하면 가족들은 피해를 본다는 말을 이야기하며


도황에게 이야기했고, 도황은 곽익의 말을 듣고 군량까지 보내주는 대담함까지 보여.



그런데 100일이 되기 전 곽익이 병으로 사망하고, 이후 교지에 있었던 양직이 오나라에 항복해.



양직은 항복했지만 모경은 끝까지 도황을 죽이려했고 도황은 모경을 죽여버려.




수윤.jpg 삼국지 촉한이 멸망하고 난 뒤에 일어났던 서진과 오나라의 교지공방전.


모경은 이전에 합포전투에서 수칙을 죽인일이 있었고 아버지의 원한을 갚기위해 수칙의 아들인 수윤은 


모경의 배를 산채로 갈라서 내장을 칼로 자르면서 이래도 우리에게 반기를 들 수 있겠느냐 물어봤는데


여기서 모경의 대답이 걸작인게


모경은 오나라의 황제인 손호를 죽이지 못한게 원통하고 너희 아버지 수칙은 개만도 못한놈이라고  


수윤의 주인과 아버지를 동시에 디스하고 죽어.









그 이후


이후 진나라는 다시 교주지역을 찾으려는 군사적인 움직임은 딱히 보이지 않았어.



교주지방이 진주등의 특산물이 많기는하나 위치가 너무나 멀어서 관리하기도 힘들뿐더러


이후 일어나는 독발수기능의 난 때문에 사실상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리고 272년 서릉에서 육항한테 대패했던 일도 있고





교지를 점거하고 남방지역을 다시 영토로 귀속시킨 오나라는 수윤을 합포태수로 삼고


교지공방전의 일등공신이었던 도황을 교주자사로 임명해서 영토를 다스리게 해.




이후 교주목으로 오른 도황은 매우 현명하고 유능하게 교주를 관리하였어. 


279년 합포태수 수윤이 사망하고 손호는 교주지역의 세금을 확실히 걷기위해 그 지역의 호구를 조사하게 하는데


곽마라는 녀석이 반란을 일으켜.



교주자사였던 도황은 곽마의 반란을 막기위해 군을 움직였는데 때마침 서진의 대대적인 대 오나라 침공이 시작되었고



곽마의 난은 진압하지 못한 상태로 오나라는 멸망하고 사마염의 서진이 중국대륙을 통일해.




도황은 촉한 멸망당시 곽익이 그랬던것처럼 끝까지 저항할 생각이었지만


손호의 신변이 확보됐고, 손호가 도황의 아들을 보내자 통곡을하며 서진에 투항해.



사마염은 도황의 직위를 그대로 유지하게 했고 도황은 죽을때까지 교주목으로 교주를 통치하다가 사망해.











연의에서도 나오지 않는 부분이라 이 교지공방전을 좀 자세히 적어보고싶었는데


자료자체가 많지도 않아서 내가 쓰고싶었던만큼의 볼륨은 나오지 않은듯..


삼도나 파성넷보고 내가 다시 고쳐쓴것도 있어 오류가 있을지도 모름.

4 Comments
딜교장인 2018.03.08 00:29  
교지는 사섭의 땅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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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짝스매쉬 2018.03.08 09:29  
[@딜교장인] ㅋㅋㅋㅋㅋㅋㅋ 사섭은 너무 옛날사람 아인교 형님 아무리 오래살았다고 해도 저떄까정 살았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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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at 2018.03.08 16:51  
사섭이 226년 사망인데 그 때 이미 80도 넘었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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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 2018.03.09 14:48  
사섭ㅋㅋㅋ이런 역사얘기좋은데 너무 어려워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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