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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유럽 침공을 막은 결정적인 사건

소희 13 2363 14 0

c0136986_4f4d6b1abc422.jpg 몽골의 유럽 침공을 막은 결정적인 사건

(몽골군이 1차 침공 당시 헝가리의 주력군을 격파한 모히 전투)



바투가 이끄는 몽골군이 헝가리/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내친김에 서유럽까지 쳐들어가려 하다가 오고타이 칸의 죽음으로 말머리를 돌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다. 많은 사람들은 거기서 몽골과 유럽의 전쟁이 끝난줄 알고 있지만....


사실 몽골은 그 이후에도 유럽의 문을 창검으로 꾸준히 두드렸다. 


그리고 그런 몽골을 막아내는건 유럽의 관문인 헝가리와 폴란드의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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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침공 당시 헝가리의 국왕, 벨라4세)


몽골의 1차 침공은 헝가리에 끔찍한 피해를 안겨주었다. 전국민의 20% 이상이 살해되거나 포로로 끌려갔고 국토의 절반 이상이 황폐화되었다. 허나 그런 혼란속에서도 벨라4세는 몽골군의 추격을 피하며 끝내 살아남았다. 


칸의 죽음으로 인해 몽골군이 퇴각한 뒤에도 벨라 4세는 결코 안심하지 않았다. 그는 패전의 이유를 곱씹었고 이후 수십년 동안 몽골의 침략을 대비하고 국력을 회복시키는데 전념했다. 벨라4세가 내린 결론은 '서유럽의 군사기술을 모방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서유럽의 강대국들에 비하면 헝가리나 폴란드는 2류 국가에 불과했고 군사력도 뒤떨어지는 편이었다. 적군의 침입을 막을 요새들은 대부분 목조 성채였고 그 때문에 몽골군의 공성기술 앞에 추풍낙엽처럼 무너져내렸다. 게다가 기사의 숫자도 턱없이 부족했고 장비의 질도 형편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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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 4세는 서유럽을 본따 수십개의 석조 성채들을 나라 곳곳에 건설했다. 그리고 몽골군에게 효과적인 위력을 보였던 기사와 석궁병을 대거 양산했다. 국내외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됐지만 왕은 개혁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몽골군이 다시 돌아올거라는걸 본능적으로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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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 4세가 죽은뒤 15년후, 몽골의 1차 침공으로부터 40년이 흐른 1285년.


몽골은 다시금 유럽 정복의 야심을 드러내며 헝가리에 일방적인 항복요구를 했다.


"유럽을 정복할 것이니 항복하고 너희 군대와 물자를 바쳐라. 그리고 서유럽까지 가는 길을 안내하라."


당시 헝가리의 국왕이었던 라슬로 4세는 "조까" 라고 대답했고 


수만명의 몽골 대군이 헝가리 2차 침공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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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몽골군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했다. 


사방에서 몽골군을 맞이한 것은 돌로 지어진 난공불락의 요새들, 잘 훈련된 기사들과 석궁병들이었다.


몽골군은 수차례 공격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병력만을 소모할 뿐 격렬히 저항하는 요새들은 함락되지 않았다. 몽골군은 홧김에 주변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요새를 포위하려는 전술을 펼쳤으나 헝가리군은 곳곳에서 청야전술과 게릴라전을 펼치는 식으로 대항했고 요충지의 요새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결국 전투마다 몽골군은 소규모 패전을 거듭했고 피해는 점점 누적되었다. 


벨라 4세의 개혁은 결코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풀리지 않는 전황 때문에 피로와 혼란이 몽골군을 잠식하고, 그것이 턱밑까지 차오를 무렵, 헝가리군은 몽골군 본대를 급습했고  

 

과거 모히에서 벌어진 전투와는 반대로 야전에서 몽골군은 처참하게 도륙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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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5년 몽골과 헝가리의 전쟁을 나타낸 삽화)
 


궁극적인 패배를 당한 몽골군은 헝가리에서 퇴각을 결심했으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사방에서 매복하고 있던 헝가리의 추격군이 달려들었고, 몽골군은 도망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간신히 귀국했을 무렵, 수만이 넘던 몽골의 군사는 거의 다 살해당하거나 포로로 잡혀 전멸한 뒤였다.

 

다소 과장섞인 연대기 작가의 기록에 의하면 지휘관과 그가 탔던 말 한필만 돌아왔을 수준이라 하니, 

 

몽골군의 피해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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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몽골군은 2년뒤 다시 대군을 모아 이번에는 폴란드를 침공하지만


폴란드 역시 헝가리처럼 서유럽의 발전된 군사기술을 받아들여 대대적인 준비를 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폴란드가 몽골을 격퇴한 경험이 있는 헝가리에 원군까지 요청하자 

 

몽골군은 헝가리에서 겪었던 것과 비슷한 전철을 폴란드에서 또다시 밟으며 대군을 잃고 패퇴한다. 


두 차례의 주요한 군사적 패배는 몽골의 침략의지와 능력을 완전히 꺾어버렸고 

 

이후 몽골이 유럽 전역을 노리고 대군을 일으키는 일은 두번 다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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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영웅광장에 서있는 벨라 4세의 동상)
 


오늘날 헝가리 국민들은 벨라 4세를 "헝가리를 재건한 제2의 국부"로 추앙하고 있다. 

13 Comments
아라가키유이 2018.01.25 10:28  
아 칸이 죽어서 회군한걸로 알고있었는데 아니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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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연 2018.01.25 10:46  
[@아라가키유이] 처음에는 칸이 죽어서 회군한게 맞고 이 내용은 그 이후에도 몇번 더 쳐들어왔다는 거임 근데 그게 실패했다고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그 당시 사료들을 보면 칸이 안죽어서 몽골이 진격했으면 서유럽도 아작났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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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가키유이 2018.01.25 12:01  
[@임나연] 정보 감사합니다!!!
하양버루 2018.01.25 15:28  
[@임나연] ㅇㅋㅇㅋ 칸 죽기 전에 바투가 계속 진격했으면 서유럽은 그냥 아작났음ㅡ실제로도 구육 칸이 교황한테 항복하라는 문서도 보냈고, 로마 교황도 쫄아서 답장보냈으니 뭐..
고추잡채 2018.01.25 10:56  
두번째들어갈때는 원나라도 갈라져서 막장테크타고있을땐데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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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부코리아 2018.01.25 17:53  
[@고추잡채] 갈라져서 막장테크탄게 아니라 원나라는원래 칸죽으면 나누는걸로 알고있는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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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모굴라스 2018.01.25 11:34  
저것도 맞는 소리인데 이미 저때는 남송을 완전히 정복하고 중국 전체를 통치할 시기여서 쿠빌라이 때부터는 내치 위주로 가고

정복 전쟁은 끝난걸로 알고 있는뎁 구지 폭팔적으로 정복 약탈 전쟁을 할 이유가 없어져 버림 이미 전 중국을 통치하고 남방의 비옥한 토지에서 풍족하게 쳐먹고 한족들 노예처럼 부리면서 살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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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버루 2018.01.25 15:25  
[@발라모굴라스] ㅇㅇ근데 1260년에 이미 원이랑 4칸국으로 분리되어서 아예 다른나라가 되었음ㅡ 저쪽은 바투가 만든 킵차크 한국임

그니가 칭기스칸이나 오고타이, 구육 정도는 몽골이 진짜 약탈전쟁이고 군사략 최정점이지만, 1280년대는 이미 분할되서 쟤내는 몽골 군사략중 일부에 불과함

고로 저 자료는 당시 몽골에 대한 역사적 맥락이 부족한듯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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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2018.01.25 13:42  
두번째는 몽골군이라고 보긴 힘듬. 두번째 당시에는 몽골이 분열되면서 중국쪽을 지배하던 원나라와 여러칸국으로 나뉨. 전력자체가 폭삭 줄어들고 유럽방면은 여러민족이 혼합되버린 혼성군이 됨.
물론 헝가리의 저 전략은 기본적으로 고려나 남송(둘다 상당히 오랜시간 방어해댔다)처럼 성이나 섬을 이용해 방어했던 전술과 일치해서 적절했음. 전성기 몽골에게 끊임없이 당해서 결국 정복당해버린 둘과 달리 오랜기간싸울수 없었던 점도 행운.

청야전술은 방어자 입장에서 사실 최후의 반항 그 이상은 아님. 한번펼치고 나면 식량소출은 물론이고 그로말미암아 인구의 감소가 더불어 일어나기 때문임. 고구려가 망한건 당나라에 망했다기보다 수나라에 청야전술펼치고 망한거에 가까운것처럼, 저 당시 헝가리 원래 살던민족이 절반이상 죽었음. 다른 민족이 침입해서 현재까지도 그 부근 민족분쟁의 원인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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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부코리아 2018.01.25 17:56  
[@망돌] 몽골군이 처음에나 공성전때매 애를 먹었지 중국먹고 동남아 먹으면서 공성전도 엄청나게 늘어서 수비자체가 힘들지 않았냐?
18색크 2018.01.26 02:26  
위에 역사 잘아는 사람들이 몽고군이 아니었다 약체 칸이었다고 하지만
헝가리의 벨라4세를 본받아야하는건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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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상어뚜루뚯 2018.01.26 09:18  
저 칸은 우리 4칸중에 최약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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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zzma 2018.02.01 11:28  
오 재밌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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