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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북한의 역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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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적 특징


 

1. '유물론'과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해석함


 

2. 민족주의적 색채가 두드러져 영토가 과장되게 표현됨


 

3. 어떤 이유에서든 외세의 개입, 그리고 외세와의 연합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함


 

4. 지배층을 '봉건 통치배'로 비하하고 피지배계층인 '인민대중'이 주도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여김


 

5. 고구려, 발해, 고려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신라, 조선에 대해서는 굉장히 부정적으로 평가함


 

6.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등 기성 종교에 대해 철저하게 부정적인 평가를 내림


 

7. 기(氣) 사상을 중시함 


 

8.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김일성의 출생지이자 '혁명의 수도'인 평양 중심의 사관이 드러남


 

9. 민중의 난(혹은 운동)을 상당히 강조함


 

10. 조선시대 분량이 많은 한국 사학계와는 달리 나름 균등하게 배분하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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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100만 년 전부터 조상들이 머물렀다고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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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건국 연도를 기원전 2333년으로 보는 한국 사학계와는 달리 북한 사학계는 기원전 30세기 초라고 보고 기술함

 

문제는 한국 사학계의 기원전 2333년 건국설도 해외의 한국사 학계에서는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비판을 받아서 별로 인정을 못 받고 있는 상황

 

당장 중국 문헌상 '고조선'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기원 전 700년 경임

 

그리고 중국의 첫 실존 왕조로 여겨지는 상나라(은나라)도 기원전 1600년 경 건국으로 추정되고 있음

 

심지어 실존 증거가 없어 전설상의 왕조로 여겨지는 하나라마저 기원전 2070년 경 건국으로 보고 있음


 

또한 기원전 3~4세기 경 철기가 시작되었다는 한국 사학계와는 달리 북한 사학계는 기원전 12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고 있음


 

그리고 고조선을 '단군조선(BC 30세기 초~BC 15세기 중엽) - 후조선(BC 15세기~BC 194) -만조선(BC 194~BC 108)'으로 가르치고 있음

 

북한 역시 '기자조선'설은 부정하며, 후조선은 고조선 토착민들 사이의 내부 정권교체에 의해 단군조선을 계승했다고 서술함

 

후조선은 국1력이 쇠퇴하여 이 무렵 부려, 구려(고구려), 진국(삼한)이 독립했다고도 기술함

 

만조선(위만조선)의 경우 한국 사학계와 기간은 동일하지만 위만을 연나라 사람이 아닌 고조선 사람이라고 가르침


 

또한 지배 영역에 있어서도 후조선 전까지 고조선이 한반도 남부지방까지 점령했다고 기술해 한국 사학계와 차이를 보임

 

그리고 고조선 멸망 이후 한사군은 한반도 서북지역이 아닌 요동지역에 위치했다면서 한반도 외세 지배를 부정함 


 

무엇보다 1990년대부터는 세계 5대 문명이라면서 '대동강 문명설'이라는 무리수를 주장하고 있음

 

​ "세계 5대 문명에는 우리나라의 대동강문화, 중국의 황하문화, 인디아의 인두쓰강(인더스강)문화, 서남아시아의 량강(메소포타미아)문화, 에짚트의 닐강(나일강)문화가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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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삼국시대)

 

'삼국시대'보다는 '고구려 시대'라고 규정하여 의도적으로 신라, 백제 등 남한 지역에 기반한 국가들을 폄하하고 고구려를 굉장히 편애함

 

일단 건국 연도부터 BC 37년으로 규정하는 한국 사학계와는 달리 BC 277년으로 가르침

 

또한 고구려를 '우리 민족 최초의 봉건 국가'라면서 동명성왕, 을지문덕, 연개소문을 민족 영웅으로 강조함

 

특히 중국에 대항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있음

 

- 대무신왕 대의 을두지의 계책

- 모본왕의 요서 원정

- 신대왕 대 명림답부의 좌원 전투

- 동천왕의 요동 서안평 함락

- 고국원왕 대 말기 유주 정벌론

- 안원왕 대의 오곡성 전투

-안시성 전투에서 이세민의 한쪽 눈을 부상시켰다는 설 채택

- 연개소문이 당 태종에 맞서 북경까지 진출했다는 설 채택

- 장수왕 시기 내몽골 동부~흑룡강 일대까지 영토를 확장했다고 언급




 

반면 신라에 대해서는 왕조를 '봉건 통치배'로 부를 정도로 굉장히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아예 '삼국통일'조차 부정함

 

애초에 '통일신라'라는 용어도 사용하지 않고 '후기신라'라는 명칭을 사용함

 

특히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린 데 대해 '동족을 배반한 자주적이지 못한 외세와의 야합'이라고 규정함

 

김춘추에 대해서는 아예 '5대 역적' 가운데 하나로 언급하고 있음

(북한에서 규정한 5대 역적: 김춘추, 이성계, 정도전, 이완용, 이승만)

 

김유신 역시 역적 평가를 받음

 

북한은 나당연합을 한미동맹과 비교하여 한국과 미국을 비난하는 데 이용함

발해 (남북국시대)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에 대해서도 굉장히 강조하면서 아예 정통성도 신라가 아닌 발해에 있다고 해석함

 

영토도 한국 사학계보다 훨씬 더 넓게 표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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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자주적인 국가였다는 식으로 굉장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림

 

일단 신라의 삼국통일을 부정했기 때문에 최초의 통일국가를 신라가 아닌 고려라고 규정하고 있음

 

또한 근대 이전까지 민족문화가 제일 번영했던 때라고 기술하고 있음

 

태조 왕건, 강감찬 역시 굉장한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음


 

 북한에서는 아예 한의학(동의학)을 '고려의학'이라고 바꿔 부르고, 천리장성도 '고려장성'이라고 부름

 

북한이 말하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고려연방제)' 역시 고려를 굉장히 띄우는 북한의 특성을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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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리조)

 

반면 조선에 대해서는 굉장히 부정적으로 평가함

 

신라 왕조와 마찬가지로 '봉건 통치배'라는 명칭을 사용함

 

(다만 '리조' 자체는 비하 의도는 없는 표현임. 북한에서의 '조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칭하다 보니 '리조'라는 표현을 쓴 것임)


 

위화도 회군을 '고구려의 고토를 회박할 기회를 놓친 사대주의적 사건'이라고 규정함

 

당연히 이를 주도한 이성계 역시 역적이라고 평가하고, 건국의 일등공신인 정도전 역시 역적이라고 평가함

 

특히 이성계의 경우 고려말 왜구 격퇴 같은 업적도 숨김

 

애초에 조선의 건국 자체를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잘못된 역사'라고 평가함

​“자기의 지위가 높아지자 고려정권을 빼앗을 음흉한 계책실현의 유리한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이성계는 1388년 4월 요동원정의 기회를 타서 고려의 정권을 가로챘다. 위화도회군은 음흉한 정권탈취야망에서 출발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엄중한 매국배족 행위였다"

 

- 『조선대백과사전』


 

“리조 봉건국가는 리성계가 고려왕조를 뒤집어 엎고 정권을 잡게됨으로서 세워지게 되었다.... 모든 역사적 사실들은 리성계가 우리나라에서 사대주의를 적극 조장시킨 극단적인 사대주의자이며 왕권을 빼앗기 위하여 우리 인민들이 그토록 열망하였던 고구려, 발해의 옛땅을 찾기 위한 료동원정을 말아먹은 장본인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조선력사』 ( (고등중학교 교과서, 1999), p.32)

​때문에 세종대왕을 포함한 조선의 모든 왕들에 대한 평가가 매우 부정적임

 

훈민정음도 세종의 창제 의도가 봉건 통치 강화 때문이라는 식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하며, 세종의 공 자체를 축소함

​북한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가 1987년 발행한 ‘조선통사’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에 대해 “봉건 통치배들은 인민들을 통치하고 봉건 륜리도덕(倫理道德)으로 얽어매기 위하여 인민들이 글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표음문자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였다”면서 “세종대왕은 계급적 이익을 위해 국가적 사업으로 훈민정음 창제를 내세운 봉건국가의 국왕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우리민족 역사와 북한정권 수립 이후 역사를 서술한 총서 ‘조선전사’ 제8권(1976년판 과학.백과사전출판사 발행)에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이유에 대해서 다소 부정적인 기술을 하고있다. 이 책은 “봉건통치배들이 어려운 한문이나 이두(吏讀)만으로는 국가관리 문서를 제대로 다룰 수 없고 이것은 곧 봉건통치체제 강화에 지장이 된다고 생각했다”며 “세종은 자기들의 계급적 이익으로부터 출발해 누구나 다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새 글자를 만드는 것을 중요한 국가적 사업의 하나로 내세우고 밀고 나갔다”고 적고 있다.

 

또 2000년 8월 발행된 ‘조선대백과사전’ 제16권은 “세종 통치 시기 봉건문화가 발전하고 나라의 대외적 지위가 높아졌다”고 지적하면서 “봉건군주로서 세종의 모든 활동과 그 결과는 봉건 지배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 시기 인민대중에 대한 봉건적 압박과 착취는 보다 강화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탈북자 증언에 따르면 실제 학교 교육에서 한글 창제에 대해 세종은 이름조차 언급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김일성이 체계화했다는 식으로 왜곡한다고 함



 

또한 이이, 이황 등 유학자들에 대한 평가도 굉장히 박해서 기 사상을 주장한 서경덕, 최한기를 더 중요시함

 

특히 조선을 '무능한 봉건 통치배가 지배하는 나라였지만 민중 덕에 500년 넘게 유지된 국가'라고 평가함

 

허준, 정약용, 김정호, 장영실 등은 북한에서도 높이 평가함

 

출처: http://m.dcinside.com/board/war/1169493



6 Comments
유이리 2020.04.10 17:43  
세계 5대문명 대동강문명....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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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벌레 2020.04.10 19:22  
근데 사실 고구려랑 발해랑 쎗던게 팩트긴함.. 
 삼국통일도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했으면 중국한테 땅떵어리 안떼어줘도 됬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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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튼대왕 2020.04.12 12:50  
[@콩벌레] 그건 모르는 거임.

고구려가 통일했는데 이완용급 매국노 10만명 나와서 후손한테 제주도 달랑 하나 남겼을지 누구 암?

그래서 역사에 만약은 없다는 말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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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집왕 2020.04.11 00:53  
기원전 2333년 믿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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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사냥꾼 2020.04.11 22:40  
동북공정 때문에 역사가 많이 뭍힌건 사실이지만
시간이 너무 흘러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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녁녁녁 2020.04.12 15:13  
ㅋㅋㅋㅋ 평양에 단군릉?? 그거 진짜 골때리던데 ㅋㅋㅋㅋ웃긴놈들진짜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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