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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초한지 속 5대 대전투

주성치 0 686 4 0
1.거록대전(B.C 207) 


거록대전.jpg [초한지] 초한지 속 5대 대전투

교전상대: 초(楚) VS 진(秦)

병력: 초군 3만여 VS 진군 15만 이상

지휘관: 항우, 경포, 포 등 VS 장한, 왕리, 섭간, 소각 등

결과: 초군의 대승, 진군의 궤멸


시황제 사후 진 제국의 폭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자, 진의 조정은 최후의 명장 장한으로 하여금 반진운동을 진압하게 하였다. 장한의 진군은 진승과 오광의 장초를 격파한 이래 위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제왕을 죽이고 항량을 참살하며 무적의 기세를 자랑하였다. 연이어 조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진군은 거록으로 향했으나, 그곳에서 항우가 지휘하는 초군의 맹렬한 반격에 큰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춘추전국을 거치며 살아남았던 강국, 진 제국의 멸망이 결정되었다.

















2.팽성대전(B.C 205)


역발산기개세.jpg [초한지] 초한지 속 5대 대전투


교전상대: 초(楚) VS 한(漢)과 5로 제후군 연합

병력: 초군 3만 VS 한과 5로 제후군 56만

지휘관: 항우, 정공 등 VS 유방, 한신(?), 위표, 장이, 한왕 신(信) 등

결과: 유방 개관광 초군의 대승

*한신의 참전여부가 확실하지 않음


서초패왕이 되어 당대 최강의 세력으로 군림한 항우와, 이에 대항한 한왕 유방의 대결. 그러나 그 실체는 전투라기보다는 참혹한 살육이었다. 제(齊)의 반란진압에 항우가 팽성을 비운 사이, 한신을 앞세워 동진을 개시한 유방은 파죽지세로 삼진을 평정하고 관중을 장악, 곧이어 5로의 제후들과 반초연합을 결성한 뒤 56만의 대군과 더불어 마침내 항우의 거성인 팽성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후 귀환한 항우는 단 3만의 군사로 자신이 왜 패왕으로 군림하는지를 증명하였다. 항우의 맹렬한 기세에 곡수와 사수에서 10여 만이 사망하였고, 수수에서 도망치다 밟혀 죽은 이가 10여 만 이었다.















3.정형대전(B.C 204)


배수진.jpg [초한지] 초한지 속 5대 대전투

교전상대: 한(漢) VS 조(趙)

병력: 한군 2만 5천~3만 VS 조군 (호왈)20만

지휘관: 한신, 장이 등 VS 진여, 조헐 등

결과: 한군의 대승


팽성에서의 뼈아픈 패배로 유방과 제후들의 반초연합은 붕괴되었고, 연합에서 이탈한 제후들은 곧이어 유방을 압박해 왔다. 이에 유방 휘하의 대장군 한신은 위표의 반란진압을 시작으로 북벌을 개시하였다. 곧이어 대(代)국을 평정하여 그 재상 하열을 사로잡은 한신은 계속해서 북상, 마침내 정형에서 20만이라 일컬어지는 조의 대군과 맞서게 된다.


이때 한신은 면만수(綿曼水)를 등져 퇴로를 스스로 없애는 배수진(背水陣)을 펼쳤다. 한군에 비해 압도적인 수적우위를 점한 마당에, 한신의 배수진을 단순한 기행이라 여긴 조의 총대장 진여는 자만하게 되었고, 결국 전군에 총공격을 명하였다. 그러나 조군 앞에서 죽기를 각오한 한군의 각오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으며, 또 한신의 비밀지령을 받은 경기병 2천기가 조군의 본진을 점령한 뒤 그들의 후방에서 타격을 가해오자 조군은 이와 같은 전세 변화에 큰 혼란을 겪게 되었으며 결국 전열이 붕괴되고 말았다.

이 전투 직후 한신은 조를 평정하여 진여와 조헐의 목을 베었고, 이때 얻은 이좌거의 조언에 따라 곧이어 연을 항복시켰다.













4.유수대전(B.C 204)


낭사옹수.jpg [초한지] 초한지 속 5대 대전투

교전상대: 한(漢) VS 초(楚), 제(齊) 연합

병력: 한군 3만(추정) VS 초, 제 연합군 (호왈)20만 이상

지휘관: 한신, 조참, 관영 등 VS 용저, 전광, 주란 등

결과: 한군의 대승


이 전투가 발발하기 전의 시점에서 유방의 모사 역이기(酈食其)는 제나라의 군주 전광을 설득시켜 항복을 받아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심 공적을 욕심냈던 한신은 천하삼분을 꿈꾸던 괴철의 언설에 넘어가 경계를 풀고있던 제나라를 공격하고 말았으며, 이에 제나라는 역이기를 가마솥에 삶아 죽이고 한신을 막기 위해 항우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곧이어 초의 명장 용저는 20만이라 일컫는 대군을 이끌고 제나라를 구원하러 왔으나 스스로의 자만과 오판으로 연합군의 대부분은 결국 한신의 계책에 말려 수장되고 말았으며, 용저 또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곧이어 맹렬한 한군의 기세에 제나라는 멸망당했고, 이로써 항우의 지원세력은 모두 소멸되었다.


















5.해하대전(B.C 202)

해하전투 진행양상.jpg [초한지] 초한지 속 5대 대전투


교전상대: 한(漢) VS 초(楚)

병력: 한군 30만 이상 VS 초군 10만

지휘관: 유방, 한신, 경포, 팽월, 주발, 관영 등 VS 항우, 계포, 종리매, 항백 등

결과: 한군의 최종승리, 초군의 전멸


결국 한신이 하북을 완전히 평정하면서 힘의 균형은 거의 유방쪽으로 기울어졌다. 곧이어 유방은 항우를 완전히 멸하기 위해 한신, 경포, 팽월 등 휘하의 지휘관들을 총동원하여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였다. 항우 또한 10만의 병력으로 유방군에 대적하였으나 한신의 포위섬멸작전에 말려들어 결국 패배를 확정받게 된다. 마침내 항우가 분전끝에 오강에서 자결을 택함으로써 초한전쟁이 모두 종결되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문화 정체성을 확립시킨 한(漢) 제국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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