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항상 결과론적이라서 물론 평가 그 각각을 어떻게 할순없겠지만,
이승만 씹새끼 맞고
김구....도 사실은 이승만에 비해 빛을 본 타입이지 동료 죽이고 난리를 쳤지만
후에 상대적으로 띄워주기 좋은 캐릭터였을따름이었다고 본다...
양비론 존나 싫긴한데 사실 그 시대가 존나 복잡했으니까 그리고 후에 살아남은자들이 판단했을따름이라본다..
저상황에서 어떻게 해야지 욕을 안먹었을까..
1. 피난민들 다 넘어올때까지 기다리다가 북한새끼들도 함께 넘어온다.
2. 피난민들 막아서고 다리에 아무도 없을때까지 기다렸다가 폭파 시킨다.
안타까운일이지만 뭘 어떻게해도 당시에는 어쩔수 없는 결정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호우호우ㅎㅎ]
ㄴㄴ 같은 시각 폭약불발로 안부서진 경인철교로 시민 수천명과 수백명의 군인 수십대의 군트럭 안전히 대피완료함. 이말은 한강인도교 건너던 시민들 대피시킬시간이 충분했다는 얘기임. 미아리 고개로 북한군 전차 몇대 뚫고 들어오자 미아리고개 부대 박살난줄 알고 조급증에 폭파시킨거임. 당시 미아리 고개 지키던 부대는 건재했음. 1사단, 6사단, 8사단은 전선에서 건재하게 방어전 수행중이었고 백선엽이 이끌던 1사단은 역으로 점령지 탈환까지 수행중이었음. 근데 통보도 없이 한강인도교 박살내서 잘버티던 1사단은 개인화기까지 버리고 개인적으로 뗏목타고 도강함. 거기에 미군오폭으로 한강이북에서 각자 강건너던 아군이 궤멸당하는 사건도 발생함. 수적 열세가 커서 서울함락은 불가항력적이었으나 방어전을 벌이던 사단들이 제대로 후퇴만 해서 방어선 갖췄으면 부대재개편할 시간도 훨씬 단축했을뿐더러 북한군의 한강이남으로의 진주를 훨씬 늦췄을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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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단지 김구가 빛이자 민족지도자로 절대적이었냐고 묻는다면 난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을뿐이야...
욕해라 먹을게
이승만 씹새끼 맞고
김구....도 사실은 이승만에 비해 빛을 본 타입이지 동료 죽이고 난리를 쳤지만
후에 상대적으로 띄워주기 좋은 캐릭터였을따름이었다고 본다...
양비론 존나 싫긴한데 사실 그 시대가 존나 복잡했으니까 그리고 후에 살아남은자들이 판단했을따름이라본다..